차 이야기/보이차 산지

이우의 대표 차산 마흑채

거목 2020. 2. 29. 18:51

마헤이짜이 마을 전경.

돈이 넘친다. 풍어기(豊漁期)를 맞아 해상(海上)에서 벌어지는 파시(波市)처럼 뭉칫돈이 몰려다닌다. 중국과 대만의 상인들은 돈을 자루에 담아 자동차 트렁크에 가득 싣고 다닌다. 차농(茶農)과 흥정이 되면 현찰과 모차(毛茶)를 바로 교환한다.

   
   마헤이짜이(麻黑寨)는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는 곳이다. 가장 이우(易武)다운 보이차(普茶)로 명성을 떨치며 노차(老茶)의 고향 이우의 대표주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포랑산차(布朗山茶)가 패기 충만한 남성적 취향이라면 이우정산차(易武正山茶)는 부드럽지만 가끔은 매운 여성적 매력이 있다.
   
   이우정산(易武正山)이라고 포장되어 팔리는 보이차를 자주 볼 수 있다. 정산은 하나의 산 이름이 아니다. 고6대 차산을 비롯한 그 일대의 여러 산을 이우정산이라 한다. 지금은 행정구역이 달리 나뉘어져 있지만 보이차를 하는 사람들은 고6대 차산을 통칭해 이우정산이라 부른다. 고6대 차산은 만전(蠻), 만사(漫撒), 망지(莽枝), 유락(攸樂), 의방(倚邦), 혁등(革登)이다.
   
   이우정산으로 판매되는 차는 하나의 차산에서 나온 순료(純料)가 아닌 여러 차산의 모차를 섞어 만든 병배(配)차로 보면 된다. 하나의 차산 이름으로 판매하는 차는 그만큼 순료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포장지에 적혀 있는 내용만으로는 그 차의 출생성분을 믿기 어렵다. 또한 순료차에 비하여 병배된 차가 나쁘다는 인식은 무리가 있다.
   
   이우정산이 아닌 마헤이짜이 이름을 앞세워 판매되는 수많은 차는 마헤이짜이의 순료만으로 만든 것이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우차구의 찻잎으로 만든 보이차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편하다. 가격이 많이 저렴한 타 지역의 대지차가 지나치게 많이 섞이지 않으면 용서해줄 만하다는 것이 현지의 사정이다. 만들어진 차의 순료가 마헤이짜이인지도 중요 포인트지만 사실은 마헤이짜이에 진정한 고차수(古茶樹)가 있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행정구역상 멍라현 이우향(縣 易武鄕)에 속한 마헤이짜이는 한족이 집단으로 이주하여 형성한 독특한 부락이다. 고6대 차산의 해발고도는 656~2023m로 편차가 크다. 해발고도가 1331m인 마헤이짜이는 연평균 17℃로 차나무 성장에 비교적 좋은 환경이다. 이우고진에서 나와 차산으로 가는 길 치고는 아주 잘 포장된 도로를 5.5㎞정도 달리면 뤄수이동(落水洞)이 나타난다. 뤄수이동에서 4㎞를 더 가면 마헤이짜이다. 포장된 길은 마헤이짜이에서 끝난다.
   

▲ 가을 햇살에 빛나는 찻잎.

마헤이짜이의 이웃동네인 뤄수이동에는 수령(樹齡)이 1200년 되었다는 고차수가 이우의 차수왕(茶樹王)이라는 이름으로 철조망에 갇혀 보호되고 있다. 이 나무의 수령은 불과 3년 전만 해도 800년이라 했다. 3년 사이에 400년이나 나이를 올릴 만큼 차산에서 차수왕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크다. 그 지역의 차수왕을 기준으로 그 일대 차산의 차나무의 수령이 대략 가늠되기 때문이다.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일부 차수왕의 나이는 믿을 것이 못 된다. 마헤이짜이의 차산은 왜화(倭化)되었음에도 생태환경이 좋은 차밭이 많다. 그러나 고차수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과장된 차수왕의 나이만큼 마헤이짜이의 차나무 나이도 상향 조정되어 있다.
   
   유명세에 비하여 불행하게도 마헤이짜이에는 고차수라고 인정할 만한 나무가 별로 없다. 사람이 채차(採茶)하기 좋게 위로 높이 자라지 못하도록 주간(主幹)을 일부 잘라냈고 수확량을 고려하여 가지치기를 하여 왜화해 버린 키 작은 대수차가 주류다.
   
   고차수다운 고차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인들이 마헤이짜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한마디로 돈이 된다. 상인들이 마헤이짜이를 선호하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진정한 고수차가 마헤이짜이에서 나오는지 유무는 상인에게는 다음 문제다. 수익성이 좋으면 그만이다.
   
   돈이 흔한 차산에서 벌어지는 집짓기 열풍이 마헤이짜이에서는 이미 지나갔다. 6개월 만에 마헤이짜이를 다시 가보니 고급차 구매와 인테리어에 큰돈을 아낌없이 쓰고 있었다. 집안의 기둥은 단순한 시멘트가 아닌 대리석으로 빛나고 있다.
   
   수완이 좋은 차농은 자신이 만든 차뿐 아니라 다른 차농의 차까지 팔아주는 모차 중개상 역할을 하며 수입을 높이고 있었다. 차농은 이제 단순한 농민이 아니다. 건강한 차를 만들어내야 하는 차농의 농심(農心)과 이윤을 극대화해야 하는 차상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필자가 아는 차농은 중형 차창에 보통급 모차를 대량 공급한다. 특급과 초특급은 고수차를 전문으로 하는 차창과 상인에게 소량 공급한다. 특급과 초특급의 질적 차이는 미세하지만 가격 차는 엄청나다. 그는 한국 사람과도 거래를 하고 있다. 차에 대한 분별력이 약한 사람이 오면 저급한 모차를 특급으로 바꾸어 파는 것이 그에게는 오히려 자연스럽다.
   
   마헤이짜이에는 ‘저울의 달인’이 살고 있다. 마을 초입에 세워진 마헤이짜이 표지석 근처에 사는 여인은 며느리와 손자도 있는 젊은 할머니다. 1인 6역(아내, 어머니, 시어머니, 할머니, 차농, 모차가공기술자)을 소화해내는 ‘저울의 달인’은 오늘도 일손을 쉬지 않고 개미보다 열심히 일을 한다. 오늘 딴 찻잎을 살청(殺靑)하기 위한 준비를 하며 틈틈이 모차에서 황편과 이물질을 골라낸다. 사람 좋은 남편은 대낮부터 얼큰하여 마냥 기분이 좋아 보인다. 전에 보았던 어린 강아지는 이제 성견이 되어 주인의 모차를 지키는 막중한 일을 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이 집의 며느리는 아기를 돌보는 것 말고는 모든 일에서 열외다.
   
   돈풍년이 가져온 또 다른 변화가 마헤이짜이에 있다. 나와 이웃을 가르는 철조망이 생겼다. 빗장조차 없던 차산의 창고에는 커다란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애완견이 아닌 방범용으로 키우는 커다란 개의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 돈의 맛은 가끔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