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풍년 만전 차산

차 이야기/보이차 산지 2020. 2. 29. 18:48 Posted by 거목

만림의 고차수 보호 표지판.

중국 윈난(雲南)성에는 제갈량이 살아 있다. 삼국지의 제갈공명 관련 전설이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게 윈난의 차산(茶山)에 살아 숨쉰다. 공명산(孔明山)이라 불리는 차산이, 남나산(南山)과 유락산(攸樂山) 두 곳에 있으며 모두 그럴 듯한 야설이 있다. 오늘 찾아가는 만전(蠻)차산은 제갈량이 쇠벽돌을 묻어 둔 곳이라는 설화에서 마을 이름이 왔다.

   
   차를 실은 마방(馬幇) 행렬이 차마고도(茶馬古道)를 분주하게 왕래하던 시절부터 오늘까지 만전의 모차(毛茶)는 이우(易武)에서 만드는 보이차의 기본 재료로 널리 쓰인다. 만전의 차가 독자적으로 부각된 적은 없다. 고(古) 6대 차산 중 예로부터 홀대받아 왔던 만전차산은 덜 알려진 덕에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의 거친 파고를 무난히 넘어갈 수 있었다. 그동안 소외되어 주목을 받지 못한 차산이었기에 오히려 잘 보전된 고차수림(古茶樹林)이 만전에 있다.
   
   나 역시 다른 유명 차산에 비하여 만전은 탐방 순위에서 뒤로 밀어두고 있었다. 지난해 의방(倚邦)차산을 가기 위해 이우에서 출발하여 상명(象明)까지 갔더니 유일한 산길 입구를 공사 중이라며 막아놓고 오토바이만 통과시키고 있었다. 혁등(革登)차산으로 돌아서 올라가는 길을 물어보니 어제 내린 비로 거대한 고목이 쓰러지며 달리던 차량을 덮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휴일이어서 아직도 고목을 치우지 못해 차량 통과가 불가하다는 의방차산의 차농 얘기에 막막했다.
   
   차산의 일정은 늘 변수가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반나절이나 소비한 것이 허무했다. 하루를 그냥 날려버리기에는 아쉬워 마지못해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곳이 만전이었다. 제갈량이 묻었다는 쇠벽돌이 아닌, 흙으로 구운 회색 벽돌로 길을 포장한 독특한 도로를 지나 찾아간 곳의 풍광이 의외로 야생 그 자체였다.
   
   만전 고차산(古茶山)은 8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만장촌(曼庄村)은 가장 인구가 많은 대채(大寨·큰마을)로 만전의 중심 마을이다. 고차수다원(古茶樹茶園)이 가장 많은 만림(曼林)이 내가 가는 곳이다. 불을 섬기는 이족(彛族)의 한 갈래인 향탕이족(香糖彛族)이 살고 있는 만림은 고 6대 차산 중에서 가장 보전 상태가 좋은 차밭이 약 1000묘(畝·현지 1묘는 약 666.7㎡) 규모로 최대를 자랑한다. 이곳의 고차수는 100년 이상 300년 수령이 많으며 가장 큰 고차수의 높이가 3.9m에 달하고 나무 둘레가 1m 정도 된다. 이우의 다른 차산과 달리 가지치기를 많이 하지 않아 왜화(倭化)하지 않은 차나무가 많다.
   
   해발 1180m에 있는 만림은 초등학교가 30㎞ 떨어져 있어 교육과 교통은 열악하다. 마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만 전력량이 충분하지 않다. 만전의 주 수입원은 차와 고무로부터 나온다. 해발이 높은 산등성이에는 차나무가 있고 해발이 낮은 곳에서는 고무나무를 키운다. 고무나무에 유황 성분이 강한 농약을 준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고지대라고 해서 바람을 타고 날리는 농약 성분으로부터 결코 자유롭다 할 수 없다. 눈에 보이는 차산 환경은 고 6대 차산 중에 제일 우월하지만 결코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만전을 처음 찾았을 때 원시림 속에 보물처럼 흩어져 있던 고차수(古茶樹)를 발견하고 흥분한 기억이 난다. 두 번째 방문 시도를 하였을 때는 타고 가던 차가 고장나는 바람에 아쉽게도 탐방을 포기한 적이 있다. 그리고 오늘 또 만전을 찾는 이유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고향을 떠나 농민공(農民工) 생활을 하다가 때려치우고 고향에 돌아온 젊은 부부와 어린아이를 만나고 싶어서다.
   
   음습한 대도시의 지하에서 어렵게 살던 이 부부는 보이차 가격의 안정화에 힘입어 만전의 모차 가격이 급상승하자 굳이 힘든 타향살이를 할 이유가 없어 귀농했다. 젊은 사내의 팔뚝에는 도시의 악몽처럼 기다란 흉터가 남아 있다. 넉넉하지 않은 전기 공급 때문에 저녁을 준비하려면 등산용 미니헤드램프를 머리에 쓰고 요리를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이들 부부는 행복하다.
   
   어린 아들은 자연과 더불어 마음대로 뛰어놀고 부부의 수입은 농민공 시절에는 꿈도 꿀 수 없던 높은 수준이다. 반가운 소식은 이들 부부의 동생들도 고향에 돌아와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았다는 사실이다. 차농의 결혼은 하나의 차산이 둘로 늘어난다는 실물 경제적 효과가 있다. 찻값이 오른 덕에 도시로 나간 만전의 청춘들이 서둘러 귀향하고 있다. 뿔뿔이 흩어져 연명하던 차산의 식솔들이 다시 만나 웃음꽃을 피운다.
   
   신선한 공기와 원시림에 둘러싸인 야외 차탁에서 마시는 보이차의 맛은 다른 무엇과 비길 수 없는 호사(豪奢)였다. 방목하여 키우는 흑돼지와 사이좋게 어울려 다니는 닭과 오리 사이로 마을 어른이 기다란 사제 총을 둘러메고 나타난다. 그의 손에는 산에서 잡은 야생 공작과 청솔모가 들려 있다. 차산의 경제권을 쥔 아들과 며느리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한가로이 사냥을 즐기고 오는 노인의 얼굴에 건강미가 넘친다.
   
   만전차산의 주가가 오른 것을 증명하듯 주택개량사업이 마을 곳곳에서 한창 진행 중이다. 돈이 넘치는 차산의 공통점은 집짓기 열풍이다. 아쉬운 점은 새로 지어지는 집들이 하나같이 환경을 무시한 자재 사용과 도시화한 외관을 보여 원시림과 전혀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을 한쪽에 보이차를 1차 가공하는 초제소(初製所)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 소유주는 쿤밍(昆明)에서 차업을 하는 한국인이다. 고 6대 차산을 중심으로 모차를 수집하여 보이차를 만드는 그는 원래 자그마한 여행업을 했다. 윈난이 좋아 돌아다니다가 보이차가 돈이 되는 세상이 되자 차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역시 차산의 환경을 무시한 시멘트와 벽돌로 건물을 짓고 플라스틱으로 마감을 하고 있었다. 결정은 그의 몫이지만 좀 더 미래를 바라보며 친환경 요소로 지을 것을 부탁할 기회를 놓쳐 안타까웠다.
   
   상명 일원에서는 만전의 고차원이 비교적 잘 보전되어 있지만 그것만으로 만전차의 밝은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만전차 특유의 개성과 맛이 2% 부족한 현실은 라오반장(老班章)과 빙다오(氷島)의 전설을 따라가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수익을 전제로 한 차산 선정에는 고려할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차의 맛과 품은 우선순위에서 빠질 수 없다. 그러나 나의 기준은 맛 이전에 차산의 생태환경이 최우선이다. 만전으로 귀농하는 젊은이들이 제갈량의 지혜를 되살려 건강한 생태환경을 잘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