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의 이름을 정하는 기본원칙이 있다. 생산지명을 먼저 쓰고 ‘6대차류(六大茶類)’ 중 어디에 속하는지를 판단해 이어 붙인다. 제조공정의 유사성과 완성된 차 맛의 공통점에 따라 찻잎으로 만든 차는 ‘6대차류(녹차·백차·황차·청차·홍차·흑차)’ 중 하나에 대부분 속한다. 보성녹차는 보성에서 나오는 녹차라는 뜻이다. 중국의 차 이름 작명도 대동소이하다. 치먼(祁門) 홍차는 안후이성(安徽省) 남쪽 황산에 속하는 치먼현에서 나오는 홍차를 말한다. 이런 기본 원칙을 벗어나는 차도 있다. 안지(安吉) 백차는 백차가 아닌 녹차인데도 ‘백차’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징구(景谷) 대백차는 백차도 있지만 녹차와 홍차도 있다.


징구 대백차나무 찻잎은 ‘백차’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제조공법을 달리하면 ‘6대차류’를 모두 만들 수 있다. ‘6대차류’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하이브리드, 징구 대백차를 보이차(普洱茶)로 만들었을 경우에도 징구 대백차라고 부르는 이유는 완성된 결과물은 보이차지만 차를 만든 원료에 더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다.

 

ⓒ 서영수 제공

 

 

차의 이름을 정하는 기본원칙은 무엇?


안지 백차가 백차라는 이름의 녹차인 사연도 유사하다. 녹차 제조공법으로 완성되는 안지 백차는 공법에 따라 차 이름을 지은 것이 아니라 백엽(白葉) 1호라는 백차나무를 강조하기 위해 이름 붙여진 것이다. 이른 봄 4주 동안만 백색에 가까운 연녹색을 띠는 백엽 1호의 어린 찻잎만을 원료로 사용하는 안지 백차는 녹차의 일반적인 제조과정에서 하는 유념(찻잎 비벼주기) 과정이 없다. 찻잎에 열을 가하는 살청(殺靑)만 없다면 백차의 제조공정과 일치하는 측면도 있다. 백차로 유명한 푸젠성(福建省)의 푸딩(福鼎)은 젊은 층의 기호에 맞춰 가벼운 살청과 미세한 유념을 가미한 신공법을 개발 적용하며, 정통 백차 제조공법 원칙을 무시한 백차도 생산하고 있다. 


기존 ‘6대차류’가 정의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차들도 속속 출현하고 있다. 안지 백차는 1800년 전 한나라 영제(靈帝) 때 ‘편하고 좋은 고장’이라는 뜻으로 ‘안지(安吉)’라는 지명을 하사받았을 때부터 기록에 나오는 차다. 백차나무는 안지현을 뒤덮은 대나무 숲과 연관이 깊다. 산림 녹화율이 71%가 넘는 안지현은 대나무가 전체 수목의 60%를 차지한다. 안지현 시룽(溪龍)향을 중심으로 재배되는 백엽 1호는 일종의 돌연변이다. 3~4월의 안지현은 비가 자주 내려 대나무 성장에 유리하지만 울창한 대나무 숲속에서 어울려 사는 키가 작은 백차나무는 광합성 부족으로 엽록소 함량이 낮아져 백화현상이 발생해 어린 찻잎이 미백색을 띠게 된다. 


안지 백차의 백화현상은 섭씨 10~23도 사이에서만 유지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청명(淸明) 전에 발아한 하얀 어린잎은 곡우가 지나면서 녹색으로 변이를 시작해 입하(立夏)가 지나면 다른 차나무 잎처럼 정상적인 녹색으로 돌아온다. 따라서 찻잎을 채취할 수 있는 기간은 3월 하순부터 4월 중순까지 4주 미만이다. 짧은 채취기간 동안 아주 어린잎만 선별해 채취해야 하는 조건 때문에 숙련된 사람이 하루에 채취하는 최대량도 2kg을 넘지 못한다. 모자라는 일손을 거들기 위해 도시로 떠났던 고향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귀향한다. 안지 백차를 만드는 봄이 되면 돌아온 농민공(農民工)과 넘치는 돈으로 안지현은 활기가 넘친다. 


“어린 찻잎 하나가 안지현 시룽향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어주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귀한 차”라고 시진핑(習近平)으로부터 예찬을 받은 안지 백차는 시룽향을 중심으로 5개의 핵심지구에서 생산된다. 120㎢에 달하는 차 재배지를 위해 종사하는 가구 수는 1만5000호가 넘는다. 차를 가공하는 회사는 350개 정도다. 인구 50만 명이 채 안 되는 안지현에서 오랜 세월 동안 대표산업이었던 대나무 관련 산업인구가 4만5000명인 반면, 후발주자인 안지 백차 산업에 연계된 인원은 20만 명에 이른다.


안지 백차가 뒤늦게 빛을 발하는 이유는 백차나무가 여러 차례 사라졌기 때문이다. 백차나무가 사라졌다는 처음 기록은 당나라 시절 육우(陸羽)와 이어진다. 인류 최초의 차 백과사전인 《다경(茶經)》을 편찬한 육우가 안지 백차를 마셔보고 감탄하며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있다. 이 차를 만나 더 이상 여한이 없다”고 크게 외치고 하늘에 올라 신선이 됐다고 한다. 육우가 가져온 차를 마신 옥황상제는 백차나무를 모두 대라천(大羅天)으로 가져오게 했다. 이때 육우는 인간 세상을 위해 백차나무 씨 한 톨을 몰래 산속에 숨겨놓았다는 전설 이후 수백 년 동안 안지 백차는 실제로 사라졌다.


안지 백차는 송나라 인종(仁宗·재위 1022~1063) 때 ‘상서로운 기운을 가진 백색의 어린 잎차가 백성 앞에 나타났다’며 역사에 다시 등장했다. 송나라 휘종(徽宗·재위 1100〜1125)이 직접 저술한 차 전문서적 《대관다론(大觀茶論)》에는 “다른 지방의 백차는 제조과정에서 하얀색을 만들어내지만 안지 백차는 가공하기 전의 어린잎 자체가 백옥처럼 흰색이다. 야생 백차나무는 험준한 계곡 사이에서 겨우 한두 그루만 자생한다”며 안지 백차의 희소성을 적확하게 묘사했다. 안지 백차는 800여 년에 걸친 은둔생활을 마치고 1930년 야생 차나무 수십 그루와 함께 세상에 다시 나왔지만 중국 근대사의 혼란 속에 잊혀졌다.

 

저장성 당서기 시절 시진핑 ⓒ 서영수 제공

 

 

역사기록과 설화를 통해 전설로만 여겨졌던 야생 백차나무 한 그루가 1982년 해발 800m 산속에서 발견됐다. 그 당시 수령 100년이 넘은 이 나무가 안지 백차의 어머니가 되는 백차조(白茶祖)다. 안지현 산림원의 기술요원, 리우이민과 청야구가 앞장서서 백차나무 가지를 잘라 삽목을 시작했다. 무성생식에 성공한 백차나무에서 수확한 찻잎으로 만든 안지 백차는 1991년 일류명차 상을 획득하며 안지 백차의 명성을 각인시켰다. 중국 차나무 품종 가운데 아미노산 함량이 제일 높은 백엽 1호는 1998년 저장성 우수품종으로 등록됐다. 

 


6대차류로 정의하기 어려운 차들 다수


안지 백차와 징구 대백차처럼 ‘6대차류’로 정의하기 힘든 차들은 찾아보면 의외로 많다. 이런 차들을 굳이 ‘6대차류’에 소속시키려 하거나 정통공법을 따르지 않는 정체불명의 사이비 차라고 오인하면 곤란하다. 세상은 변하고 입맛도 변한다. 그런 흐름을 따라 새로운 형태의 차도 출현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은 ‘답습’이 아닌 ‘새로움’에 방점이 있듯, 신공법 차에 대한 외면보다 수용이 필요하다. 차를 마시면서 ‘6대차류’를 알게 되면 아는 만큼 차 맛의 깊이도 깊어진다. ‘6대차류’를 벗어나는 하이브리드 차를 이해하면 차 세계가 넓어진다.

 

원조’ 타이틀 두고 벌어진 백차대전(白茶大戰)

백차(白茶) 삼국지의 기선을 잡기 위해 윈난(雲南) 대백차의 주생산기지인 징구(景谷)는 청나라 정부기록을 근거로 푸젠성(福建省) 백차의 조상은 윈난성이라며 정통·원조 경쟁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푸젠성은 청나라 기록보다 앞선 명나라 문필가 주량공(周亮工)이 쓴 푸젠성 풍물기록 등을 내세워 윈난성의 주장을 반박했다. 차 문화와 산업에 있어 원조라는 타이틀과 스토리의 힘은 막강하다. 푸젠성의 푸딩(福鼎)과 정허(政和)는 물론 윈난성 징구 지역의 차 전문가와 산업종사자는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백차 원조’ 자리를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다.

 

윈난 대백차를 살청하는 기술자 © 서영수 제공

 

 

고문헌 설화 등으로 백차 발원지 논쟁

 

윈난성 푸얼시(普?市) 징구는 3450만 년 전 관엽목란(寬葉木蘭·야생차나무의 조상) 화석이 지구상에서 발견되는 유일한 지역으로 차 조상 발원지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징구현에 속한 양타촌(秧塔村)이 윈난 대백차의 발원지다. 150여 년 전 란창강(瀾滄江) 주변을 돌며 장사를 하던 진육구(陳六九)라는 상인이 차산에서 우연히 백차종 나무를 발견하고 씨앗을 남몰래 따서 죽통에 숨겨 와 고향인 양타촌에 돌아와 심었다. 처음에는 텃밭에 심어 키우다가 수년이 지나 마을 이곳저곳에 차나무를 분양해 양타촌 전체에서 백차나무를 키워 대백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진육구가 심었다는 윈난 대백차의 조상나무가 4.5m 높이를 자랑하며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다. 하얀 솜털로 가득 덮인 윈난 대백차는 외형과 맛이 뛰어나서 청나라 옹정제(雍正帝) 때 윈난에서 황실공차로 바쳐지던 보이차(普?茶)와 함께 징구에서 공차로 진상되던 백룡수공차(白龍鬚貢茶)의 맥을 잇고 있다. 중국 백차 시장에 뒤늦게 진입한 윈난 대백차의 시장점유율 확장을 위해 징구현은 정부가 중심이 돼 차 상인 및 농가와 함께 품질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윈난의 대백차 산지 © 서영수 제공

 

 

생산량 확대를 위한 차나무 수종개량과 채취 단계부터 완성할 때까지 신기술을 접목해 등급에 맞는 품질표준화를 추구하는 징구현은 윈난 대백차의 위상과 지명도를 높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역사와 전설을 통한 스토리 만들기에 고심하고 있다. 청나라 정부기록에 의하면 1857년 징구현에서 대백차나무를 푸젠성의 푸딩으로 옮겨 와 심었다는 사실과 1867년부터 푸딩에서 백차를 만들었다는 대목이 있다. 사료를 근거로 푸젠성 백차나무의 조상은 윈난성이라고 징구현은 중앙정부에 주장했다. 

 

징구현에 맞서 푸딩은 ‘차신’으로 추앙받는 육우(陸羽)가 당나라 때 쓴 《다경(茶經)》 7장에 나오는 백차 생산지인 백차산(白茶山)이 바로 푸딩에 있는 푸딩타이무산(福鼎太?山)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의 모든 차를 ‘6대차류(六大茶類)’로 정리한 진연(陳?) 교수도 《다경》을 검토한 후 푸딩의 손을 들어줬다. 송(宋)나라 휘종(徽宗)이 저술한 《대관차론》에도 백차가 푸딩에 소재한 황실차원에서 생산되어 황실에 공납된다는 기록이 있다. 사료와 민간기록을 참조하면 푸딩이 유리했다.

 

이를 승복하지 않은 윈난성이 1800여 년 전 윈난 지역 차 조상신으로 모시는 파아이렁(??冷)과 7공주 설화를 근거로 원조를 자처하자 푸딩은 삼황오제(三皇五帝) 시절 백차나무 전설을 근거로 백차 발원지가 푸딩이라고 공언했다. 승산이 불투명한 ‘백차 원조’ 경쟁도 중요하지만 차의 품질과 생산량이 더욱 중요함을 인지한 푸딩과 징구는 신기술 개발에 집중했다. 푸딩은 중국 10대 명차에 이름을 올렸고 징구 대백차는 윈난 8대 명차에 선정됐다. 징구 대백차를 윈난 대백차라고도 부른다.

 

윈난 대백차는 ‘6대차류’로 분류하면 백차에 속하지만 시장에서는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완성된 차가 아닌 차를 만드는 원료로서 부를 때도 윈난 대백차라고 부르는 이유는 제조공법에 따라 ‘6대차류’에 속하는 모든 차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윈난 대백차나무 찻잎으로 백차는 물론이고 제조공법의 변화에 따라 녹차와 홍차 그리고 보이차도 만들 수 있다. 윈난  대백차는 일광과 그늘에서 말리는 방식 중 한 가지를 선택하거나 병행해서 사용하는데 햇빛을 전혀 보지 않고 달빛으로만 말린다는 ‘월광백(月光白)’이 최근 로맨틱한 이름으로 인기가 높다.

 

장미를 혼합해 만든 월광백 © 서영수 제공

 

 

월광백은 월광미인, 월광백차, 월광차라고도 불리는데 방 안에서 햇빛을 차단하고 달밤에 말려서 매력 넘치는 이름을 가지게 됐다는 설과 완성된 찻잎이 앞면은 검고 구부러진 뒷면은 어린 솜털로 덮여 흰색으로 빛나는 모양이 어두운 밤에 뜬 초승달처럼 아름답다고 이름 지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월광백을 보이차로 보는 시각도 일부 있지만 무리다. 월광백은 달빛이 아니어도 최소한 태양에 노출되면 안 되는 제작공정원칙이 있어 반드시 태양 아래 말려야 하는 보이차 표준 제조공법과 다르다. 윈난 대백차를 원료로 보이차 제조공법으로 만든 보이차와 월광백은 똑같은 원료를 사용하지만 전혀 다른 종류의 차다. 월광백은 정통 백차 제작기법으로 만든 백차지만 장미꽃과 혼합해 재가공돼 장미 월광백으로 변신하면 백차가 아닌 재가공차로 분류한다. ‘6대차류’에 속한 차를 꽃과 병배하거나 향을 입히는 2차 공정을 거쳐 완성시키면 재가공차라고 한다. 

 

푸딩의 백차 생엽 © 서영수 제공

 

 

대백차 산지 각각의 강점 내세워 경쟁

 

윈난 대백차는 원조 경쟁과 스토리텔링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하지는 못했지만 대백차를 원료로 신기술을 적용해 다양한 종류의 차를 생산해 내는 한편 ‘달빛으로 빚어지는 월광백’을 신무기로 장착해 젊은 차 애호가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푸젠성의 푸딩은 가장 높은 지명도와 많은 생산량을 장점으로 시장에 어필하기 위해 정통 공법과 다른 신기술 개발을 도입해 백차 시장의 요구를 선도하고 있다. 지명도가 떨어지는 정허는 생산량도 많지 않아 안타깝지만 제값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정허는 생산량과 명성이 아닌 전통 수공예 제작방식을 고수하는 방법으로 정허의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중국 백차 삼국지를 이끌어가는 푸젠성과 윈난성의 3대 백차 생산기지는 3인3색 개성과 원조 논쟁을 넘어 신기술 경쟁과 전통 고수라는 각자의 길로 백차 시장을 함께 키워 나가고 있다. ​

 

3인 3색 개성 만점, 중국 백차(白茶) 삼국지 

백차(白茶)는 중국 ‘6대차류(六大茶類)’ 중 가장 먼저 만들어진 차라고 한다. 녹차를 위시해 열을 가해야만 만들 수 있는 다른 차와 달리 찻잎을 따서 시들려 만드는 백차는 차의 차가운 기질이 그대로 잘 보전돼 있는, 차로서 무더위를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는 차다. 더운물로 우려 마셔도 좋지만 찬물에 찻잎을 넣어 한나절 두었다가 마시는 냉침법(冷浸法)을 활용하면 더욱 좋다. 백차는 중국에서도 극히 제한된 지역에서만 생산돼 중국인도 그 실체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정허백차 ⓒ서영수 제공

 

 

시진핑, 백차 전성시대 개막에 일조

 

최근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백차의 전성시대를 여는 데 일조한 사람이 시진핑(習近平)이다. 시진핑은 중국 국가주석으로 취임하며 ‘공적비용절감 3대원칙’을 실시했다. 부패 척결 차원에서 고급 차관(茶館)에 대한 출입 자제와 보이차(普?茶) 선물을 지양할 것을 시진핑이 직접 언급하자 고가의 보이차를 뇌물로 주고받던 관행이 사라졌다. 차 시장의 흐름을 주도하던 보이차 시장이 얼어붙으며 차 유통산업 전반에 불황의 그림자가 덮쳤다. 그동안 보이차에 올인했던 장단기 투기자금이 새로운 투자 대상으로 백차에 몰렸다. 중국 전체 차 시장에서 미미한 비중이었던 백차가 틈새시장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정허백차를 실내 건조하는 모습

 

'차 이야기 > 기타 차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이산 정암차 - 우란갱 육계 & 혜원암 수선  (0) 2019.12.07
명차(名茶)의 품격  (0) 2019.10.01
경덕진  (0) 2019.10.01
원조를 뛰어넘은 짝퉁 ‘타이완 우롱차  (0) 2019.10.01
백차  (0) 2019.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