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차와 장향

차 이야기/보이차 이야기 2020. 3. 4. 00:21 Posted by 거목

제가 사는 곤명의 아파트입니다.
운남이 원림, 원예방면으로 기술의 축적도 오래되었고 관련 산업의 활성도도 높은 지역이라
어지간한 아파트 단지에 가보면 조경이 참 좋습니다.

열대와 아열대가 모두 있는 지역이라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나무들도 많습니다.
가장자리로 심어 놓은 이 나무도 마찬가지인데요.
장향목, 장나무라고 부르는 나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나 남해안 일부 지역에서 자생한다고 들었습니다.
운남에서는 따뜻한 기후 덕분에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입니다.

이파리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가장자리는 톱니 모양이 아닌 밋밋한 형태, 가운데 주맥이 통과하고 보통 3~4개의 측맥이
대칭을 이루며 있습니다.
다 자란 이파리는 두툼하고 뻣뻣하며 진한 초록색이 납니다.
어린 이파리는 연한 녹색이 나면서 부드럽습니다.
'장향목'이라는 이름은 말처럼 장향이 나는 나무라는 말입니다만,
나무 옆에 가서 코를 들이대고 아무리 냄새를 맡아봐도 별다른 향이 없습니다.

다 자란 이파리를 따서 저렇게 손으로 구겨보면 향이 납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장향'이라는 독특한 향기입니다.
독자적으로 장향이라고 하는 향이 있으니 다른 향과 빗대어 표현하기가 참 어렵습니다만...
대강의 느낌을 말하면 송진의 향기와 박하의 향기를 섞어놓은 듯한 향입니다.
장향목에 있는 이런 향기성분은 어린 이파리에는 없습니다.
다 자란 진한 초록색의 뻣뻣한 이파리에서 나옵니다.
이파리가 자라면서 향기성분도 생성되고 축적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파리 이외에도 뿌리 부분, 나무의 껍질 부분에서도 향기가 납니다.
물론 물리적인 압력을 가해서 저렇게 세포의 파손이 있어야 향기성분이 퍼져 나와서 맡을 수 있습니
다.
장향목은 해충 기피효과가 꽤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운남에서는 아파트 조경에도 많이 쓰이고 길거리 가로수로도 쓰입니다.
그리고 대만이나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것이 운남의 다원에서 강렬한 태양 볕을 가려주는
용도로 많이 심는다고 이야기 합니다.
아쉽게도 운남에 있는 제가 가봤던 많은 지역의 다원에서는 어쩌다 한두 그루만 봤을 뿐,
많은 개체를 심어둔 곳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햇수를 좀 묵은 보이차를 마실 때 차에서 장향이 나는 이유를 다원에 심어둔 장
나무 때문에 그렇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다원에 심어둔 장나무의 이파리가 떨어지고 그 향기 성분을 차나무가 흡수해서
그렇다고 한다는데요,
정말 그럴까요?

 

 

오래된 보이차에서는 '장향' 말고도 연잎향, 그리고 대추향과 비슷한 향기도 나옵니다.
만약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다원에 장나무의 이파리가 떨어지고,
그 향기를 차나무가 흡수해서 난다고 가정해 보지요.
그럼 연잎향이 나는 것은 다원에 연못이 있어서 연잎의 향기를 흡수해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리고 대추향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원에 대추나무가 많아서, 대추가 익어 떨어진 후 차나무가 그 대추의 향기를 흡수해서
오래된 보이차에서는 대추향이 날까요?

물론 그럴 리는 없습니다.
만약에 이런 주장이 사실이라면, 막 따낸 생엽에서도 그런 향기가 나와야 할 것이고
만들고 나서 바로 마셔도 비슷한 향기가 나와야겠지요.
하지만 차나무에서 따낸 이파리의 향기를 바로 맡아보면 풀 비린내가 가장 많이 납니다.
위조나 탄방을 통해 수분이 약간 날아가면서부터 향긋한 향기가 나오면서 처음의 비릿한
향기는 많이 줄어듭니다.

그리고 살청, 유념, 건조를 마치고 난 쇄청모차의 향기는 막 따낸 생엽의 향기와 비교했을 때
전혀 다른 향기로 변해있습니다.
갓 만든 쇄청모차에서는 태양 볕에 말린 마른 풀에서 나오는 향기인 '일쇄향'과 함께
높고 깨끗한 향기인 청향이 납니다.
차나무에서 막 따낸 생엽에는 약 80여 종의 향기성분이 있습니다.
이 생엽을 가지고 녹차를 만들어서 향기성분의 종류를 추출해보면 약 260여 가지의 향기성분이 나옵
니다.
홍차는 더욱 많은 약 400여 종의 향기성분이 검출됩니다.
생엽에 비하면 약 다섯 배가 많은 수치이지요.
이런 변화는 생엽에 있던 많은 성분들이 효소의 작용, 습열작용, 가수분해, 이성질체화 작용 등의
각종 화학 반응을 통해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장향이나 대추향, 연잎향은 차를 만들고 시간이 꽤 지나야 나오기 시작합니다.
대추향 같은 향기는 이무지역의 1아3~4엽으로 만든 생차를 우리나라 기후에서 2년
정도만 보관하더라도 나옵니다.
이런 향기가 나오는 원리는 쇄청모차를 만들 때 있었던 반응과 비슷합니다.
오랜 시간 보관하면서 생기는 각종 화학 반응을 통해서 처음에는 없었던 향기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보이차의 장향과 관련해서 자료를 찾던 중 2010년에 실험한 논문을 봤습니다.
실험 내용은 네 가지 종류의 유익균으로 쇄청모차를 각각 악퇴발효를 시킵니다.
각 균이 쇄청모차를 발효시킨 후 차에서 나오는 향기의 유형과 성분을 조사한 논문입니다.

 

 

실험에는 운남농대, 사모사범고등전문과학교 생명과학과, 임창다엽연구소가 참여했습니다.
네 가지 유익균을 살펴보겠습니다.

녹색근매 Trichoderma viride  Pers.ex  Fr. 
흑국매 Aspergillus niger van Tieghem
소근근매 Rhizopus arrhizus Fischer
양주효모 Saccharomyce s cerevisiae

세 가지 곰팡이와 한 가지의 효모입니다.
모두 식품 가공에 두루 쓰이는 유익균입니다.
주로 간장과 같은 장류의 가공 과정 중 발효에 관여하고
식초, 술을 만드는 발효에도 씁니다.
빵, 과자 등을 만들 때에도 발효과정에 참여하지요.
위에 있는 네 가지 균은 모두 유익균에 속합니다.
식품의 발효 과정에 참여해서 만들어 내는 결과가 인간에게
유리한 것을 만들어 내니까요.
유익균이라고 해서 식품 제조에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적절한 습도, 온도,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제대로 활동할 수 있고 부패로 넘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 네 가지 균을 가지고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에 쓰인 차는 운남성에서 생산된 쇄청모차입니다.
쇄청모차를 네 더미로 나누고 모차에 각각의 균을 접종시켜서 결과를 봤습니다.

네 가지 균으로 발효시킨 보이차에서 나온 화합물 중에서 50여 가지를 뽑아서
정리를 한 자료입니다.
빨간색으로 네모칸을 만든 곳을 보면
중문으로 (S)-α-松油醇, 영문으로 3-Cyclohex ene-1-methanol, α α,4-trimethyl 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 보입니다.
이 복잡한 명칭의 화합물이 보이차의 장향을 내는 성분입니다.
옆에 향기를 보면 장뇌향, 알싸한 향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즉 장뇌향과 더불어 코를 자극시키는 향기가 있는 화합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장뇌는 장나무 껍질을 벗겨 증류해서 얻은 것을 말합니다.
중약으로도 쓰이는 약재고 우리가 보이차에서 이야기하는 장향과 같은 향기입니다.
실험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네 가지 유익균 모두 장향을 가지고 있는
화합물을 만들어내는 데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즉 악퇴과정 중 곰팡이균과 효모가 차를 발효시키면서 이런 향기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장향을 악퇴발효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숙차라는 것이 생차의 진화속도를 극단적으로 줄인 차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오래된 생차에서 장향이 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네 가지 균류를 제외하더라도 차에서 발견되는 많은 미생물도 차를 발효시키면서 
장향을 가진 화합물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결론을 내려보겠습니다.
보이차에서 나는 장향은 미생물이 차의 발효에 관여하면서 생긴 방향성 화합물이 내는 향기입니다.
또한, 오래된 보이차가 아니라 곰팡이가 생길 수 있는 높은 온도와 습도를 유지한 창고에 넣어
보관한 차에서도 충분히 나올 수 있는 향기입니다.
만든 지 6개월이 안 지난 보이차에서도 말입니다.
그러니 보이차에서 나는 장향은 만든지 20년, 30년이 지나야 비로소 나온다는 이야기와
다원에 심어져 있는 장나무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근거가 없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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