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차의 제조 과정

차 이야기/흑차 2020. 3. 1. 00:04 Posted by 거목

흑차란 차가 완전히 건조되기 전에 퇴적하여 미생물에 의해 후발효가 일어나도록 만든 차입니다. 즉, 흑차의 가장 큰 특징은 제조과정 중에 미생물에 의한 후발효 과정이 있다는 것으로, 전발효차(全醱酵) 혹은 후발효차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홍차의 제조 과정에서 찻잎에 일어나는 변화인 ‘산화’를 다른 말로 일컫는 ‘발효’가 아니라 치즈나 요구르트, 김치 등을 만들 때 미생물에 의해 일어나는 실제적인 ‘발효’를 의미합니다.)
영어권에서는 흑차를 ‘dark tea’ 또는 ‘hei cha’라고 쓰고 있는데요 후자는 흑차(黑茶)의 중국어 발음을 영어로 표기한 것입니다.

흑전차

흑차의 제조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 흑차의 제다 과정
① 채엽
② 위조
③ 살청 - 초청
④ 유념
⑤ 악퇴[渥堆, piling] - 발효
⑥ 건조
⑦ 기타 - 사분[篩分, screening/grading]·긴압[緊壓, pressing]
①~⑥ 까지 과정에서 ⑤번의 ‘악퇴’ 과정을 제외하면 녹차의 제다과정과 동일합니다. 녹차, 황차, 흑차의 제조과정에는 유사성이 있는데 여기서는 ‘악퇴’ 과정에 대해서만 설명 하고자 합니다.
악퇴(渥堆)의 한자 악(渥)은 ‘1.두텁다, 2. 젖다(물이 배어 축축하게 되다), 적시다’, 퇴(堆)는 ‘1. 쌓다 2. 쌓이다’의 뜻을 가지고 있어요. 즉, ‘물에 적셔서 쌓다’라고 풀 수 있겠습니다.
악퇴 과정에서는 찻잎을 적절한 환경 아래에서 일정 높이로 쌓고 그 위에 습포 등을 덮어 보습보온 효과를 주어 찻잎에 발효가 일어나도록 합니다.
때에 따라 찻잎이 건조할 경우 쌓아놓은 찻잎 더미에 물을 뿌려 찻잎의 함수율을 올리기도 합니다. 악퇴는 흑차를 흑차답게 만들어 특유의 품질을 형성할 수 있게 해 주는 가장 핵심적인 공정입니다.

악퇴중인 흑차 

악퇴 공정이 끝나고 건조를 하면 일단 기본 가공과정이 끝나고 모차가 완성됩니다.
⑦번은 정제 과정으로 사분은 일정한 크기의 찻잎을 골라내기 위해 ‘체’를 치는 공정으로 등급 분류이며, 긴압 공정은 차의 종류에 따
라 다양한 형태로 찻잎을 압축하여 모양을 만드는 공정입니다. 주로 원반 모양이나 벽돌과 같은 형태가 많지만 호박 모양이나 심장, 혹
은 버섯 모양 등 다양한 형태의 차들을 볼 수 있습니다.
흑차는 바로 마시기보다 시간을 들여 숙성하여 마시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차의 제조 과정이 차 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어 여기
에서 이야기 하는 제조과정이 모든 차에 적용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략적이나마 흑차의 제조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흑차는 제조 과정 중 미생물 발효 과정이 있는 발효차인데, 그 제조 과정은 ① 채엽 ② 위조 ③ 살청 ④ 유념⑤ 악퇴 ⑥ 건조
의 과정으로 이루어지며 ‘악퇴’ 과정을 통해 찻잎이 발효되고 흑차 특유의 특성을 지니게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흑차의 악퇴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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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흑차

차 이야기/흑차 2020. 2. 29. 23:51 Posted by 거목

호남성은 북위 25°~32° 지역에 위치한 중국 차산지의 중심지대이며 최대 흑차 생산지입니다.
고대 중국 상고시대 농업의 신이며 다조(茶祖)로 불리는 신농씨(神農⽒)가 백 가지 풀을 맛보다가 중독 되었
을 때 차로써 그 독을 풀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세계 최초로 차나무를 발견하게 되었고, 농경문화를 전수해 주
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입니다.
당나라 초기 서예가인 구양순(歐陽詢)이 태어난 호남성은 유명한 관광지인 장가계(⾧家界)와 동정호(洞庭
湖)가 있고 묘족(苗族), 토가족(⼟家族), 린족(吝族), 요족(瑤族), 회족(回族) 등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습니다.
남서쪽에 있는 설봉산 (雪峰⼭)의 구릉지대와 산악지형에는 원시 차나무가 자란다고 하는데, 바로 이곳 설봉
산의 차 재배지역에서 채취한 중, 대엽군체 품종을 원료로 하여 만들어진 차가 호남흑차입니다

호남흑차 

흑차는 과초살청((鍋炒殺⾭ : 차의 생잎을 고온의 가마솥에 넣어 덕어 풋내를 제거함), 악퇴(渥堆 : 차를 무덤
처럼 쌓아 일정한 온도와 습도조건에서 발효시키는과정) 와 송시명화건조(松柴明⽕乾燥 : 소나무를 땔감으로
불을 지펴 건조하는과정) 라는 매우 특수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 차를 말하는데, 호남흑차는 바로 호남
성 설봉산맥의 차잎으로 이러한 살청,유념, 악퇴, 송시명화건조 등 4대 작업과정을 거쳐 제조됩니다.
이렇게 만든 차의 외형은 마치 미꾸라지 모양과 같고 색깔이 검고 반지르르하며, 찻물이 등황색이고, 맛이 진
하고 순하며, 소나무 연기의 그을음과 같은 독특한 향기가 차잎에 배어 있습니다
호남성 중에서도 호남흑차의 주요 산지는 <안화(安化)시 이지만, 그 외 익양(益陽), 도강(桃江), 녕향(寧鄕),
한수(漢壽), 원강(沅江)등에서도 생산되어 발전해온 이 호남흑차는 차마고도와 실크로드를 통한 교역물중의
하나였는데,티벳, 네팔, 인도와 청해, 신강, 몽고, 중앙아시아 등으로 수출되었습니다.
흑차와 관련된 최초의 문자기록은 1524년입니다.
명나라 가정3년(1524년) 어사 진강의 상소문에 "상차(商茶)는 저급하고 가짜인지라, 모두 흑차로 징수했
다...관차(官茶)는 말(⾺)로 바꾸고, 상차는 내다 팔았다" (明史 <⾷貨志>)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유구한 역사를 지닌 호남흑차는 호남성 변경의 소수민족들에게 "사흘 양식은 굶어도, 하루 차는 거를
수 없다"고 할만큼 필수음료였습니다
또한 변경지방의 이민족들인 티벳, 몽고, 위구르 등의 육류식단 지역에서는 비타민 섭취를 위해 오랫동안 음
용되어 왔고 현재에도 손님 접대 등 일상생활의 필수품이 되어 있습니다.
흑차류의 차들은 차가 완전히 건조되기 전에 악퇴하여 곰팡이가 번식하도록 함으로써 곰팡이에 의해 자연히 후발효가 일어나도록 만든 차로 독특한 풍미와 부드러운 차 맛을 냅니다.
보이 산차와 같이 긴압 하지 않고 마시기도하고, 압착하여 덩어리로 만든 후에는 저장 기간이 오래될수록 고급 차로 간주됩니다.


* 호남흑차의 종류


호남성에서 생산되는 흑차는
♦ 흑전(⿊磚)
♦ 화전(花磚)
♦ 복전(茯磚)
♦ 상첨(湘尖)
♦ 천첨(天尖)
♦ 천량차(千兩茶) 등이 있습니다.
일차 가공으로 만든 흑모차를 증기에 찌고 눌러서 포장하여 광주리에 담은 것을 천첨(天尖)이라 하고, 증기에 쪄서 고체인 벽돌 모양으로 만들어진 것을 흑전, 화전, 복전, 상첨 이라고 합니다.
흑전, 화전, 복전을 호남삼전(三磚)이라고 부르고, 흑모차를 만들 때 탄청(摊青 : 따낸 이파리를 넓게 펴두어 시들리는 과정으로서 생엽 내의 수분을 적정 정도 줄여줌)、살청(杀青 : 뜨거운 수증기나 솥의 열에 의해 생찻잎 속에 효소의 활성을 억제시켜 찻잎의 화학 변화를 막는 공정)、초유(初揉 : 첫번째 비비기. 초벌 유념)、초이청(炒⼆青 : 80℃-90℃의 솥에 6-8분 정도 흔들어 줌), 족간(⾜⼲ : 발로 밟음)등으로 가공하여 다시 둥글게 말아 비벼서 광주리에 포장을 한 상첨(湘尖)이 있는데, 1級 흑모차로 만드는 상첨1호, 2급 흑모차로 만드는 상첨2호, 3급 흑모차로 만드는 상첨3호로 구분하고 있습니다.(湘尖⼀号,湘尖2号,湘尖3号).
그리고 천첨(天尖)차는 호남흑차삼첨(三尖)중 특급모차로 만들어진 차를 의미합니다.
보이차와 더불어 청나라 황실에 받치던 공차(貢茶)인 천첨은 황제가 마셨다 하여, 차 중의 명차인 흑차, 그 흑차 중에서도 가장 특급인 차입니다. 그리하여 그 위세가 하늘을 찔렀다 하여 천첨(天尖)이라 한다지만, 사실은 그 잎이 적어서 적을 첨(尖)자를 쓰는 것 같습니다.

검은색이라기 보다는 아주진한 남색계열입니다.윤기가 있고요.전반적으로 이렇게 진한 남색계열의 잎에 녹색끼가 있는 잎들이 군데군데 보였습니다. 여린잎 보이차에 비하면 상당히 큰잎들이지만, 흑차만 놓고 따지면 상당히 작은 잎들입니다.그래서 天尖 입니다.

겸리에서 판매중인 호남흑차 천첨 
이 사진도 호남흑차인 천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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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이상 된 강전, 세월의 흐름에 못지않게 맛 또한 깊습니다.

30년 이상 된 강전, 세월의 흐름에 못지않게 맛 또한 깊습니다.


강전차(康塼茶)란?


장족(藏族)이 주로 거주하는 티베트(즉 西藏)에서 즐겨 마신다고 해서 장차(藏茶; 창자)라고 부르는 차가 있습니다. 300만 명에 이르는 티베트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차인데, 겸리에서 얼마 전에 소개하였던 금첨(金尖: 진젠)과 강전(康塼: 캉좐)이 바로 장차입니다. 강전과 금첨은 모두 흑차의 한 종류이지만 원료의 등급에서 강전이 금첨 보다 높습니다.
장차는 당나라가 차마고도(茶馬古道)를 지배하면서 나온 차입니다. 일설에는 서기 641년 당나라 문성공주가 당시 티베트 지역의 토번 왕(土蕃王)에게 시집올 때 차를 가지고 온 것이 시초가 되어 차를 수입해서 마시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만큼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를 가진 차입니다.

금첨이 길쭉한 형틀에 모양을 만들어 포장한 후 대바구니에 담아 만든 것이라면, 강전은 찻잎과 줄기를 살청한 후 여러 번 퇴적과 비비기 후 건조했다가 증기로 쪄서 벽돌 모양으로 만든 것입니다. (둘 다 대나무 포장을 하는 것은 같으나 금첨이 길쭉한 형태 하나로 포장을 하는 반면, 강전은 벽돌 모양으로 만들어 여러 개를 모아 대나무 포장함 )

겸리에서 소장하고 있는 금첨으로 대나무 포장으로 되어 있음. 티베트에서는 보통 5kg 단위로 되어 있는 대나무 포장 6개를 한 묶음으로 포장하여 약 30kg 단위로 보관하고 있음. 
강전은 이와 같이 벽돌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음.

강전은 중국 사천성(四川省 : 쓰촨성)에서 생산한 흑차를 말하는데, 여기서 강(康)이라는 것은 바로 오늘날 사천성 감자현(甘孜 : 간쯔현)의 강정(康定 : 캉딩)을 중심으로 한 지역 일대입니다.

강정시가 위치한 간쯔현의 구글 위성 지도(붉은 테두리) 

강정시는 예로부터 성도(成都 : 청두)에서 청해성(靑海省 : 칭하이성)과 티베트 자치구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티베트에서 중국 내지(사천 등)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하여 티베트의 장족들이 외부 세계로 나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으로 티베트와 중국 내륙과의 교류가 빈번함에 따라 티베트의 말(馬)과 중국의 차를 교환하는 차마호시(茶馬互市)가 자연스럽게 생겨났습니다. 이미 청 강희 황제 때인 1696년 지방정부의 청을 들어 강정에 정식으로 차마호시가 개설되어 수백 년을 이어내려 오고 있습니다.
강정에서 집산되는 특산품은 티베트뿐만 아니라 인도, 유럽 등지로 나갔는데, 강정이 가장 번창하던 1940년 대에 강정은 상해, 무한과 더불어 중국의 3대 상업도시로 발전하였습니다.

오늘날의 강정시 모습

중국에서 생산되는 차(茶) 역시 이렇게 강정으로 집산되는 특산품 중의 하나였으며, 일단 강정에 모인 차는 고산준령을 넘어 티베트의 내지로 운송되는데, 주로 라싸(拉薩, 납살)를 중심으로 한 티베트의 대도시로 퍼져나갔습니다.
강정에서 라싸까지는 1,000km가 넘는 험로로 일단 라싸에 도착하면 강정보다 몇 배의 가격에 거래됩니다.
이처럼 티베트에서 소비되는 차의 집산지가 된 강정(康)으로 들어오는 벽돌 모양(塼, 혹은 磚)의 차가 바로 강전(康塼)입니다. 강전의 원료는 운남의 보이차 보다 비교적 저렴하여 티베트 상류층(주로 스님)은 주로 보이차를 소비하였고, 일반 서민층은 주로 사천(일부는 운남)에서 만들어진 강전이나 금첨과 같은 차를 소비하였습니다.
현재 시장에 간혹 나오는 오래된 강전과 금첨은 티베트로 팔려 나갔던 흑차가 어떠한 경로를 거쳐서 개인 소장가 혹은 판매상의 손에 들어와 유통되고 있는 차입니다.
겸리에서도 80년대에 만들어진 이 강전을 대만에서 개인 차상인으로부터 직접 구입하였습니다.
1950년대 중국 공산당이 티베트를 점령하여 이 지역이 정치적으로 불안정해지자 유목민들이 많은 양의 차를 비축해 두었다고 합니다.
사실 티베트나 중국의 유목민에게 있어서 차는 하루도 없어서는 안 될 생활필수품이기 때문에 양식 이상으로 비축해 두었고, 해마다 새롭게 차를 만들어 마시니 당시 비축해 둔 강전이나 금첨 같은 차가 남아 있게 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겸리의 이 강전은 흑차 생산으로 유명한 동재차창(桐梓茶廠)에서 만들었습니다. 귀주성 준의(遵義 : 쭌이)에 있는 차장으로 특히 이 차창의  금용패(金龍牌) 강전이 매우 유명한데, 바로 겸리의 강전이 금용패 강전입니다.

금용패 강전은 품질이 우수하나 구하기가 힘들어 중국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도 인기가 높았습니다. 차 자체의 생산량이 적고 잎의 품질이 다른 사천의 강전보다 좋은 것을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금용패 강전은 현재는 구하기 어려운 차에 속하는데, 이와 같이 오래된 강전은 더욱 그러하기 때문에 이 차를 희귀 차라고 하는 것입니다.
강전차의 특징
* 흑차는 부드럽고, 은은하게 단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흑차가 인기가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 단맛인데, 흑차류에 속한 차면 이런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게 됩니다. 이 흑차들이 시간이 오래되면 무미(無味)를 동반한 깊이를 가지게 됩니다.
* 보이차와 마찬가지로 흑차도 발효를 하므로 오래되고 잘 보관된 흑차는 보이차 노차와 마찬가지의 대우를 받습니다. 오히려 보이차 보다 흑차가 객관적인 가치가 더 높이 평가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품질이 우수한 흑차의 경우 가격적 측면에서나(상대 적으로 저렴하므로) 질적인 측면에서 보이차를 능가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 금첨은 거칠고 차 줄기의 함량이 많은데 비해서 강전은 보다 찻잎의 품질이 높고, 차 줄기 함량이 적으며 맛이 보다 부드럽습니다. 찻물은 진한 갈색입니다.
* 열악한 환경 속에 있는 티베트는 소량의 보리가 산출되는 지역으로 야크와 면양의 고기, 그리고 보릿가루로 만든 ‘짬파’가 주식이었습니다. 육식 위주의 식생활은 영양의 불균형을 가져옴은 물론 소화 장애를 유발하였고, 혈액의 산성화와 고지질에 의한 대사 장애 증상에 의해 평균수명이 극히 짧았는데 차를 마시고부터 병이 줄고 평균수명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합니다.
참고로 흑차의 어린 찻잎에는 카페인과 아미노산 함량이 풍부하여 각성 효과와 맛이 뛰어난데 비해, 성숙한 찻잎에는 질병 치유 효과와 예방효과가 우수하여 몸에 대단히 유익한 폴리페놀 성분이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습니다.
* 개완이나 자사호로 우려내어 마셔도 되지만, 강전이나 금첨은 끓여마시면 또 그 맛이 색다릅니다. 보리차 끓이듯 마시면 되는데, 보통 강한 불에 짧은 시간 동안 끓이는 것보다 약불로 30분 정도 은은하게 끓여 마시는 것이 훨씬 맛이 좋습니다.

강전을 우리기 전

 

강전을 우린 차

우린 후 엽저


남로변차(南路邊茶)

 

강전과 같이 중국에서 변경지역에 제공되는 차를 변차(邊茶)라고 하며, 사천성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사천변차(四川邊茶)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사천성에서 생산된 차를 변경으로 수송하는 차인데, 사천변차는 소비지에 따라 남로변차(南路邊茶)와 서로변차(西路邊茶)로 나뉩니다.
남로변차는 오늘날의 차마고도를 따라 티베트의 창도(昌都)와 라사(拉薩) 등지를 거친 후 인도와 네팔 등 남아시아 지역으로 들어가고, 서로변차는 한수(韓水)에서 나와서 섬서로 들어가 영하(寧夏), 감숙(甘肅), 청해(靑海), 신강(新疆), 몽고 및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로 퍼져갔는데, 실로 실크로드와 다름없었습니다.
서로변차는 복전(茯磚), 방포(方包)라는 차가 있고, 남로변차(南路辺茶)에는 강전(康塼), 금첨(金尖)이 있는데, 강전은 바로 티베트로 수송하는 남로변차에 해당하는 차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천변차는 호남성을 대표로 하는 흑차와는 그 건조가공 기술에 차이가 있어 사천변차를 흑차로 분류하지 않고 따로 사천 오차(烏茶)로 부르기도 합니다. (홍차도 오차라고 부르는데, 이와는 관련 없습니다)
장기간의 운송과정 중에 겪는 습열(濕熱) 작용 등으로 인해 비취색의 차가 검고 윤기 있는 차로 변했기에 오차(烏茶)라고 불린 것입니다.

강전을 우린 후의 엽저. 잎이 크고 매우 검은색을 띠는 것이 특징임. 또한 차나무 가지가 많이 섞여 있음. 

오차는 폴리페놀류 물질의 산화 중합으로 떫고 쓴맛이 순화되고 찻물의 빛깔 역시 맑아 우유 등을 가미하여 음용하기에 더욱 적합했는데, 이런 종류의 차는 오히려 변방 민족에게 매우 환영받았습니다. 맛과 영양 측면에서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식품이 되었던 것입니다.
강전 역시 장족의 전통적인 음다법인 수유차에 사용되는 것으로 버터와 소금, 호두 등등을 첨가해서 마셨습니다. 또한 강전에는 크고 널찍한 찻잎과 차나무 가지 등이 뒤섞여 있어 우려 마시기보다는 끓여 마시기에 적합한 대표적인 차입니다.
이 사천변차의 역사도 거의 1천 년이 되어갑니다. 서기 1107년을 전후하여 사천지역에서 생산되기 시작하였는데, 당시에는 생잎을 증청(蒸靑)하여 만들었습니다. 현지의 차과사(茶課司)가 이 차를 징수하여 차마사(茶馬司)에게 보내 서북 각지의 유목 민족과 마필로 교환하니, 이것이 바로 송나라 시기부터 시작된 차마교역입니다.


강전의 주요 산지

강전의 주요 산지는 운남성과 사천성입니다. 그러나 운남의 찻잎 원료가 고가여서 거의 90%의 강전은 주로 사천성에서 생산되었습니다.
위의 지도에서 보면 강정 우측 옆에 아안(雅安 : 야안)이라는 도시가 있는데, 이곳이 바로 강전의 주 생산지입니다. 사천성의 의빈(宜賓 : 이빈)도 주요 생산지이지만 아안이 대표적인 강전의 생산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안은 추운 고산지역이라서 주로 소엽종을 재배하였고, 여기서 만든 차의 대부분이 티베트로 옮겨져 소비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만들어진 장차(藏茶)는 주로 해발 1,100m 이상의 몽정산(蒙頂山 : 멍딩산) 지역에서 4~7월경에 채취된 찻잎을 가지고 만듭니다.

아안의 몽정산 다원 

송나라 때 이미 아안을 티베트의 전문 차 공급지로 정하고 생산량의 거의 전량을 강정을 통하여 티베트에 공급한 역사적 사실을 통하여 아안이 얼마나 주요한 차 생산지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강정에서 티베트로 공급되는 차를 일반적으로 남로변차(南路邊茶)라 불렀던 것입니다.
아직도 티베트 지역에 유통되는 차의 약 90% 이상이 모두 사천성의 아안 등에서 만든 강전과 금첨이라고 하니 이들 지역이 갖는 유구성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강전의 제조 방법


남로변차의 제조방법은 운남의 보이차와는 약간 다른 제조공정을 거칩니다. 강전과 금첨의 제다 과정은 거의 같은데 이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도자차(刀子茶): 찻잎 자르기
사천지역의 소엽종 차나무의 찻잎을 곡우(穀雨)가 지난 다음에 찻잎이 다 자라면 작은 칼로 잘라서 채엽합니다.


2. 하홍과(下紅鍋): 살청(殺靑) 즉 열처리
채엽한 생엽을 뜨거운 솥에서 열처리. 이렇게 만들어진 차를 모차(毛茶)라고 하며, 모차에는 잎과 줄기가 섞여 있습니다.

3. 화차(和茶): 유념(揉捻)과 건조, 즉 비비기와 말리기
열처리를 마치면 다시 증열(蒸熱)을 가해서 반복해서 비비기를 진행. 찻잎의 모양이 잡히면 건조. 이 과정에서 약간의 발효가 진행되나 아직 찻잎은 녹색에 가깝습니다.
옛날에는 자루에 담아서 발로 밟아 유념을 했으나 현재는 기계를 이용하여 유념을 합니다.


4. 주장차(做庄茶): 찻잎 수매(收買)
농가에서 1차 제다를 마치면 차창(茶廠)에 판매. 차창에서는 찻잎의 품질에 따라서 등급을 나눠서 수매합니다.


5. 악퇴(渥堆): 찻잎 발효 수매한 찻잎은 함수량이 30% 정도이며 아직 녹색에 가까움. 차를 두껍게 쌓아서 발효를 진행. 보이차는 조수악퇴법(潮水渥堆) 즉 차엽을 두껍게 쌓고 물을 뿌려서 습열 작용과 미생물에 의한 발효가 진행되지만, 장차는 물을 뿌리지 않고 자연발효를 합니다.


6. 번퇴(飜堆): 찻잎 뒤집기
자주 뒤집기를 하여야만 두껍게 쌓아 놓은 찻잎의 내부 온도가 일정하며 고르게 발효가 진행됩니다.


7. 출창(出倉): 찻잎 꺼내기
악퇴와 번퇴 과정을 거쳐 발효를 마치면 찻잎을 꺼냄.


8. 쇄차(晒茶): 햇볕에 말리기
발효과정이 끝나면 햇볕에 말림. "아무삼일청(雅無三日晴)"이라고 하였듯이 아안은 삼일 이상 맑은 날이 없다고 합니다. 아안은 고산지역으로 일기 변화가 심해서 햇볕이 드는 날이 많지 않아서 쇄청과정이 매우 어렵습니다.


9. 상창(上倉): 창고로 옮기기
햇볕에 잘 말린 차는 다시 창고로 옮김.


10. 간차(揀茶): 차 고르기
줄기와 잡질 등을 골라내는 과정.


12. 청차(淸茶): 다시 고르기
다시 한번 더 잡질을 골라냄.


13. 찰경(鍘梗): 긴 줄기 잘라 내기
긴 줄기는 즉도(줄기를 자르는 칼)로 잘라냄. 과거에는 줄기 함유량이 약 25/100%였으나, 현재는약 12/100% 으로 낮추었습니다.


14. 배창(配倉): 병배(倂配) 즉 찻잎 배합하기
긴압하기 전에 등급에 따라서 찻잎을 섞는 과정.


15. 타조(打弔): 마대자루에 담는 과정.
무게를 달아서 마대 자루에 담음.


16. 주파(走把): 옮기기
마대에 담은 차를 긴압하는 곳으로 옮김.


17. 증차(蒸茶): 증기로 김을 쐬기
긴압을 위해서 차를 고온 증기로 쐬어 부드럽게 함.


18. 용포(舂茶): 찧어 긴압하기
증기로 찐 차를 나무틀에 넣고 32근 무게의 용봉(舂棒:나무 방망이)으로 차를 다져서 성형. 찍어 내는 크기는 일정치 않으나, 일반적으로 5근 무게의 베개 모양입니다.


19. 출포(出包): 꺼내기
긴압한 차를 꺼내서 표기를 한 다음 200개 단위로 쌓아둠.


20. 간쇄(揀刷): 부스러기를 털어 내기
긴압한 차는 9일간 자연건조를 마치면, 겉면을 털어서 깨끗이 하고 상표를 붙임


21. 리지(裏紙): 종이로 포장하기
한 덩어리씩 황색 종이로 포장.


22. 곤포(梱包): 묶기
네 덩어리를 한 묶음으로 묶음. 무게는 대략 약 10kg.


23. 편두: 대나무 광주리에 차를 담기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긴 광주리 모양의 자루에 차를 담음. 대나무를 사용하여 포장을 하면 통풍이 되어 장거리 운송과정에 차의 변질을 방지하며 차를 보관할 때 후 발효에 도움이 됩니다.


24. 편포(編包): 봉하기
대나무로 엮어서 만든 긴 광주리의 입구를 봉함.


25. 타호(打號): 상표 표기
철제 도구에 불을 달궈서 대나무 광주리에 차창 혹은 상품 기호를 표기. 일반적으로 금첨은 홍색의 둥근 원을, 강전은 흑색 원을 표기.


26. 입창(入倉): 창고에 들이기
이렇게 포장이 마무리되면 출하 전까지 창고에 저장. 사천 아안 지역에서는 위와 같은 특수 제다 방법으로 수백 년 동안 장차를 만들어 왔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장차(藏茶)는 연구 결과에 의하면 근 500여 종의 인체에 유익한 유기물질을 함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열악한  자연환경에서 살아가는 장족들은 부족한 영양분을 차에서 섭취하여 건강을 유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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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이상된 금첨, 세월의 흐름에 못지 않게 맛 또한 깊습니다. 

 

금첨(金尖 )이란?   

 

금첨이란 중국 사천성(四川省, 쓰촨성)에서 생산하는 흑차로 사천변차(四川邊茶)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흑차에 대해서 더 알아 보시려면 클릭하세요 :)

 

변차(邊茶)는 말 그대로 변경지역에 제공되는 차라는 뜻입니다. 사천성에서 생산된 차를 변경으로 수송하는 차인데, 사천변차는 소비지에 따라 남로변차(南路邊茶)와 서로변차(西路邊茶)로 나뉩니다. 

남로변차는 오늘날의 차마고도를 따라 티베트의 창도(昌都)와 라사(拉薩) 등지를 거친 후 인도와 네팔 등 남아시아 지역으로 들어가고, 서로변차는 한수(韓水)에서 나와서 섬서로 들어가 영하(寧夏), 감숙(甘肅), 청해(靑海), 신강(新疆), 몽고 및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로 퍼져갔는데, 실로 실크로드와 다름 없었습니다.

 서로변차는 복전(茯磚), 방포(方包)라는 차가 있고, 남로변차(南路辺茶)에는 강전(康磚), 금첨(金尖)이라는 차가 있는데, 금첨은 바로 티베트로 수송하는 남로변차에 해당하는 차였던 것입니다.

강전이 찻잎과 줄기를 살청한 후 여러 번 퇴적과 비비기 후 건조했다가 증기로 쪄서 벽돌 모양으로 만든 것이라면, 길쭉한 형틀에 모양을 만들어 포장한 후 대바구니에 담아 만든 것이 금첨입니다.

이러한 사천변차와 호남성을 대표로 하는 흑차와는 그 건조가공기술에 차이가 있어 일부에서는 사천변차를 흑차로 분류하지 않고 따로 사천 오차(烏茶)로 부르기도 합니다. (홍차도 오차라고 부르는데, 이와는 관련 없습니다)

 

이렇게 대나무 포장으로 되어 있는데,  1개에 약 5kg입니다. 티베트에서는  보통 5kg 단위로 되어 있는 대나무 포장 6개를 한 묶음으로 포장하여 약 30kg 단위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보듯, 금첨은 먼 국경지대의 소수민족 지역으로의 길고 험한 길을 대나무 포장을 한 후 다시 야크(티베트 고산 지역의 검은 소)가죽으로 포장하여  '마방'을 이용하여 변방 유목민족 지역까지 운반 하였습니다.  

밤낮의 기온 차이와 날씨 변화의 영향을 받는데다 방습 능력이 떨어지는 대광주리로 포장한 탓에 쉽게 습기를 흡수하는 찻잎 역시 쉽게 변색되게 마련입니다.

장기간의 운송과정 중에 겪는 이와 같은 습열(濕熱) 작용으로 인해 비취색의 차가 검고 윤기 있는 차로 변했기에 오차(烏茶)라고 불린 것입니다.

 

사천성에서 티베트의 중심 도시인 라싸까지의 도로가 1954년에 개통되었는데, 그 이전까지 이렇게 가죽으로 포장하여 마방을 이용하여 히말라야 산을 넘어 티베트까지 차를 운반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도로가 없는 변방지역에는 1954년 이후에도 가죽으로 포장하여 마방을 이용하여 운반 하였습니다.  

 

야크 가죽으로 포장한 모습. 이렇게 5kg짜리 6개가 한 단위로 포장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10kg 짜리 3개가 원래의 모양이데, 이것을 가죽 포장하면서 반으로 잘라서 포장하는 것입니다.  

오차는 폴리페놀류 물질의 산화중합으로 떫고 쓴 맛이 순화되고 찻물의 빛깔 역시 맑아 우유 등을 가미하여 음용하기에 더욱 적합했는데, 이런 종류의 차는 오히려 변방 민족에게 매우 환영 받았습니다. 맛과 영양 측면에서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식품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사천변차의 역사도 거의 1천 년이 되어갑니다. 서기 1107년을 전후하여 사천지역에서 생산되기 시작하였는데, 당시에는 생잎을 증청(蒸靑)하여 만들었습니다. 현지의 차과사(茶課司)가 이 차를 징수하여 차마사(茶馬司)에게 보내 서북 각지의 유목민족과 마필로 교환하니 , 이것이 바로 송나라 시기부터 시작된 차마교역입니다.

 

대나무 통 안에 들어있던 내비 

 

현재 시장에 간혹 나오는 오래된 금첨은 티베트로 팔려 나갔던  흑차가 어떠한 경로를 거쳐서 개인 소장가 혹은 판매상의 손에 들어와 유통되고 있는 차입니다.

겸리에서도 70년대에 만들어진 이 금첨을 대만에서 개인 차상인으로부터 직접 구입하였습니다. 당시 30kg 구입하였으나 현재 2kg 남아 있으며 100g 단위로 판매 중입니다.

보통 야크 가죽으로 보관되어 있던 금첨을 바로 개봉하여 마시면 가죽 냄새가 나는데, 이 금첨은 티베트에서 유출된 이후 오랫동안 가죽을 벗긴 상태에서 잘 보관되었던 것을 구입한 것으로서, 가죽 냄새가 전혀 없이 노차의 깊은 맛이 납니다.

 

금첨은 큰 잎으로 만드는데, 이러한 차의 장점은 시원하고 달다는 것입니다. 티베트 등지의 소수민족은 야채를 구할 수 없으므로 비타민의 공급을 위해 이러한 차를 구해 마셨습니다

 

금첨을 우린 차

 

 엽저

 

 

 

 제품안내

   


제품명

  금첨

원산지

 중국 사천성

용량/크기

   100g

재질

   사천 흑차

구성

  차와 포장

수입판매원

  직접구매

소비자 상담 연락처

  010-6382-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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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차란?

차 이야기/흑차 2020. 2. 29. 22:44 Posted by 거목

흑차는 대중엽(⼤中葉)종 차를 원료로 살청, 유념, 악퇴, 송시명화건조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지며, 건차는
흑갈색의 윤기와 광택을 띠고, 찻물은 맑고 진한 붉은 빛이며 송연향을 지닌 독특한 품질의 흑모차와 그것을 증압
(蒸壓)하여 만든 긴압차(緊壓茶)의 총칭입니다.
흑차(⿊茶)는 제다하는 과정 중 퇴적 과정을 통해서 발효가 되므로 찻잎 색깔이 검고, 차를 우려서 찻잎을 손으로
만져보면 찻잎은 짓뭉개지고 탄력이 없습니다.
외형의 색상이나 탕색이 흑갈색으로 변했기 때문에 흑차라고 부릅니다.
흑차는 후발효차로 분류되며, 산화효소로 발효시키는 청차나 홍차와는 달리 황차와 흑차는 미생물로 발효시킵니
다.
흑차는 수분이 남아 있는 상태의 찻잎을 고온다습한 곳에 쌓아두는데 이때 생기는 미생물이 찻잎의 발효를 촉진시
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흑차에는 천량차(千兩茶. 호남성 안화安化), 육보차(六堡差. 광서성 창오현 육보향六堡鄕), 보이숙차(普
洱茶. 운남성), 상첨차(湘僉茶. 호남성 안화), 육안차(六安茶. 안휘성 육안시六安市), 흑전차(⿊磚茶. 호남성 안
화 백사계⽩沙溪) 등이 있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이 블로그에서 차례로 소개할 예정입니다.
* 아래 사진은 흑차의 생산지역입니다.

1. 원료의 특수성
중엽,대엽종의 잎이 거칠고 일정비율의 줄기가 함유된 숙성도가 높은 흑모차를 사용합니다
2.복잡한 가공
20차례 이상의 가공 공정을 거치며, 오랜 기간 미생물의 분해와 대사작용을 거칩니다.
3. 품질과 맛이 독특
크고 늙은 차엽을 이용하지만, 달고 부드러운 원숙한 맛과 특유의 균화향(菌花⾹)을 띠며, 선홍빛의 맑은 빛깔을
지님. 지방분해에 탁월합니다.
4. 보존과 효능
次⽣미생물(冠突散囊菌)의 분해와 대사가 진행되어 품질과 풍미,약리기능 향상. 지방의 분해, 당뇨병 개선효과.
금지옥엽(⾦枝⽟葉)이라 불리며 소장가치를 지닙니다.
● 흑차 제다 용어
1. 위조(萎凋) : 일광,실내자연
2. 과초살청(鍋炒殺⾭) : 생엽을 고온의 가마솥에 덖어 풋내 제거.
3. 유념(유捻) : 비벼서 세포파괴
4. 악퇴발효(渥堆) : 무덤처럼 쌓아 일정한 온도와 습도 조건에서 퇴적발효.
5. 송시명화건조(松柴明⽕乾燥) : 소나무로 불을 지펴 건조
● 흑차의 종류
1. 호남. 흑전, 화전, 복전, 상첨, 천첨, 천량차
益陽의 安化⽩沙溪, 岳陽의 臨湘
2. 호북. 노정차, 노청전
3. 광서성 육보차
4. 사천변차 : 남로변차(강전, 금첨). 서로변차 (복전, 방포)
5. (운남 보이차)
● 호남흑차와 유사한 흑차류의 구분
1. 증청녹차인 사천성의 오차(烏茶)는 후발효하여 외견상 색깔과 광택, 일부 화학성분이 흑차와 비슷하나, 흑차의
악퇴발효와 송시명화건조 과정이 달라 '녹차후발효차'로 봐야 합니다.
2. 운남보이차는 쇄청 녹모차(쇄⾭ 綠⽑茶)를 후발효 시킨 차로서 변차(邊茶)이긴 하지만 흑차와 다릅니다.
3. 광서성 육보차(六堡茶)는 가공과정, 품질특성이 호남 흑차와 비슷합니다
● 천첨차(天尖茶)에 대하여
청나라 건륭 연간(18세기) 산서성 곡옥 차상은 안화에서 비교적 여린 차엽을 사용한 흑모차(섬인)를 구입한 후,
현지에서 가공하여 아첨(芽尖), 백모첨(⽩⽑尖), 천첨(天尖), 공첨(貢尖), 향첨(鄕尖), 생첨(⽣尖), 곤첨(捆尖) 등
7종류의 산차를 생산했습니다.
천첨, 공첨, 생첨을 삼첨이라하여 호남흑차의 상등품으로 서북지역 귀족들이 음용하였고, 청대 도광연간(1825
년)에 천첨과 공첨은 공물로서 황실에서 음용되었습니다
그 중 천첨차는 곡우 후에 채집한 차를 82쪽 혹은 84쪽으로 된 중우체(中⾬체)로 걸러서, 꼭꼭 밟아 큰 포대(⼤
包)로 만들었습니다.
● 흑차의 주요 성분
1. 폴리페놀류. 카테킨 및 기타 폴리페놀
2. 색소류. 차황소, 차홍소, 베타카로틴 등
3. 사포닌
4. 다당류
5. 아미노산류. 테아닌, 감마아미노부티르산
6. 알칼로이드. 카페인
7. 무기원소류. 셀레늄, 불소
● 흑차의 효능
1. 영양을 보충해 준다.
흑차는 비타민, 광물질 이외에 단백질, 아미노산, 탄수화물 등 풍부한 영양을 함유하고 있어, 일반적인 식생활에
서 얻을 수 없는 필수영양분을 보충해줍니다.
2. 소화를 돕고, 기름기를 분해하고, 소화기관을 편하게 한다.
흑차에 함유되어 있는 카페인, 비타민, 아미노산, 인지질 등이 인체의 소화를 돕습니다.
또한 지방대사를 조절하고, 카페인의 자극작용으로 위액의 분비를 높혀 식욕을 증진시키고 소화를 촉진시킵니다.
3. 다이어트 효과, 혈관을 부드럽게 하여 심혈관질병(⼼⾎管疾病)을 예방합니다.
흑차에는 지방함량을 떨어뜨리고, 살을 빠지게 하는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또한 혈액속의 지방함량을 낮추고 혈액의 응고를 방지해주어 심혈관질병 같은 것을 예방할수 있다고 합니다.
4. 항산화(抗氧化)작용으로 노화방지
흑차는 피부의 산화작용을 막는 항산화작용을 하여 노화를 방지한다고 합니다.
5. 항암(抗癌)효과
6. 고혈압 치료
혈액의 응고와 지방함량을 낮추고, 혈관을 부드럽게 하여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7. 혈당을 낮추어 당뇨병 치료 효과
발효차중 차다당복합물(茶多糖复合物)의 단백질 분해효소와 당분효소, 가수분해효소의 작용으로 혈당을 낮추어
줌. 흑차속에는 이 차다당복합물(茶多糖复合物)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고 합니다.
8. 살균(杀菌), 소염(消炎)
흑차에 함유되어 있는 차황소(茶黄素), 차홍소(茶红素)가 살균 및 소염작용을 한다고 합니다.
9. 이뇨해독(利尿解毒)작용
흑차에 함유되어 있는 카페인 성분이 이뇨작용을 하며, 이때 몸속에 있는 독소를 같이 배출하게 한다고 합니다.

청나라 옹정황제에 진상되며 황실공차 지정

 

중국 이우(易武) 지역의 보이차(普洱茶)는 청나라 옹정황제(雍正皇帝)에게 1729년 처음 진상되면서 황실공차(皇室貢茶)로 지정됐다. 차마고도(茶馬高道)의 시발점이기도 한 이우고진(易武古鎭)은 6대 차산에서 생산한 차의 집산지였다. 다이(傣)족 발음을 한자로 음차(音借)한 ‘이우’는 ‘미녀 뱀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스핑(石屛)의 한족들이 명나라 때 이주해 차를 만들었던 이우는 윈난(雲南)의 다른 차산과 달리 소수민족과 한족 문화가 공존해 왔다.

이우는 노차(老茶) 중에서도 최상위 등급인 골동급(骨董級) 노차의 고향이다. 마시는 골동품으로 알려진 호급차(號級茶) 대부분이 100여 개가 넘는 이우의 차장(茶莊)에서 만들어졌었다. 공차(貢茶)제도가 사라진 청나라 말기부터 중화민국 시절까지 생산된 보이차의 이름이 대부분 호(號)로 끝나기에 호급차로 부르는 진품은 한 편에 수억원을 호가한다. 최근 홍콩 경매장에 나온 송빙호(宋聘號)와 생산시기가 1920년대로 추정되는 양빙호(楊聘號)는 2억7000만원과 3억원에 각각 낙찰됐다.

보이차 박물관

이우는 최상급인 ‘골동급’ 노차의 고향

이우의 유명한 차장들은 농업 집단화와 함께 개인상점을 인정하지 않았던 마오쩌둥(毛澤東) 시대를 거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식량증가와 생산성만 강조한 대약진운동은 차나무를 마구 베어낸 자리에 옥수수를 심어버렸다. 당시의 차 가격은 동일 중량의 옥수수보다 비싸지 않았다 한다. 전통문화를 부인하며 공자마저 인정하지 않던 문화대혁명은 나이 어린 홍위병을 앞세워 보이차 장인들을 색출해 처단했다. 홍위병은 집 안과 창고에 남아 있던 보이차를 자본주의 자산으로 치부해 불태웠다. 전통 보이차의 흑역사가 진행되며 이우의 명성도 잊혀졌다. 

이우는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 초기에도 엄동설한이었다. 지방정부 차원에서 차 산업을 다시 일으키려고 해도 차산은 황무지처럼 방치돼 있었다. 보이차 제조기술을 가진 인력이 이우에는 이미 없었다. 제조 기술자였던 사람도 문화대혁명 시절 홍위병을 생각하면 선뜻 나서지 못했다. 신(新)6대 차산의 맹주, 멍하이(勐海)로 넘어간 보이차 생산의 주도권을 찾아오기는 요원했다. 이우의 전통과 명성을 부활시키는 행운의 봄바람은 뜻밖에도 대만에서 불어왔다.

이우를 찾아온 대만의 차상을 반기는 이우향장 장이(張毅)는 호급차 제조기술을 보유한 장인을 어렵게 찾아내서 전통 제작기법으로 만든 정통 보이차를 만들었다. 수십 년 전 이우의 차를 가져간 추억이 있던 홍콩에서도 이 소식을 알고 주문이 들어왔다. 보이차 조공행렬을 재현한 ‘관마대도(官馬大道)’ 행사가 중국 CCTV의 협조로 2006년 4월2일 이우고진에서 열렸다. 9개 성, 3개 시, 76개 현을 거쳐 1만2000km를 말과 사람이 함께 걸어 베이징에 도착했다. 말과 사람이 모두 지쳐서 행사가 길어지는 바람에 비용은 초과됐지만, 보이차를 중국 전역에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는 오히려 기대 이상으로 성공했다.

이우의 차 산업이 다시 꽃피우게 되는 재미난 일이 때마침 벌어졌다. 150여 년 전 청나라 황실에 공차로 바쳐진 보이차의 한 종류인 금과공차(金瓜貢茶)가 자금성(紫禁城) 지하창고에서 온전한 형태로 발견됐다. 자금성에 함께 보관됐던 다른 종류의 차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보이차만 유일하게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만수용단(萬壽龍團)이라고 이름 붙여진 노차는 보이차태상황으로 모셔져 일반에 공개됐다. 중국 언론의 집중 관심을 받은 보이차는 신비한 차로 다시 주목받았다. 공차의 시발점이자 노차의 고향인 이우의 차 산업이 새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이우는 밀려오는 차상들과 넘치는 관광객들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 중국 서남쪽 끝에 있는 윈난성에서도 가장 남쪽에 위치한 시상반나(西雙版納)의 주도(州都) 징훙(景洪)에서 자동차로 3시간 정도 달려 이우에 도착했다. 보이차로 빛나는 시절을 재연하고 있는 이우는 이동거리도 짧고 대부분 포장도로이기에 다른 보이차 산지보다 찾아가기 편하다. ‘관마대도’ 행사 기념비가 있는 언덕과 초등학교 사이에 남아 있는 이우의 옛 마을은 가옥과 길은 잘 보존돼 있지만, 전통과 맥을 제대로 이어오는 이우의 후손은 많지 않다. 갑자기 불어온 보이차 붐에 편승해 보이차와 전혀 무관하게 살아오던 후손이 이름만 유명무실하게 남아 있던 상호로 뜬금없이 보이차를 만들어 판매하기도 한다.

이우에서 만들어지는 보이차는 대형 차장에서 제조하는 기계식 공정이 아닌 전통 수공 방식으로 제다(製茶)해 전통석모압병(傳統石模壓餠) 방식으로 차를 만드는 곳이 많다. 영화관이었던 단독건물을 개조해 보이차 제조와 건조 창고로 사용하는 지인을 만났다. 산 높고 물 맑은 청정지역답게 밭이 아닌 산속에서 채취한 귀한 나물과 버섯으로 가득한 식탁 위의, 방목해서 키워 지방이 껌처럼 쫄깃한 돼지고기 수육과 민물생선 양념구이가 침샘을 자극했다. 대나무를 갉아먹고 사는 차 벌레를 튀긴 특식요리는 보기엔 엽기적이었지만 아삭한 식감이 새우깡보다 맛있었다. 자리를 차실로 옮겨 그가 만든 이우의 고수차를 마셨다. 이우 특유의 부드러운 풍미와 단아함을 가득 품고 있는 고수차를 시음하더니, 동행한 중국인 지인들도 감탄사를 연발하며 황후의 맛을 즐겼다.

보이차의 모양을 잡아가는 기술자

 넘치는 관광객으로 ‘제2의 전성기’ 맞은 이우

이우보다 먼저 차산지로 인정받았던 만사(漫撒)와 만라(曼腊)는 화재와 민란으로 차산 관리가 어려워지면서 1728년부터 이우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보이부지(普洱府志) 기록을 보면 당시 보이차는 금값의 두 배를 줘야 살 수 있다고 적혀 있다. 황후가 아니면 마실 수 없을 정도의 사치품이었다. 이우의 보이차는 흔히 이우 정산(正山)차로 통용된다. 정산은 특정한 산의 이름이 아니다. 이우와 만사 그리고 만라를 아우르는, 무려 9240만㎡에 달하는 여러 산줄기에서 나오는 차를 정산차에 포함시킨다. 해발 700m에서 2000m에 이르는 이 지역의 고수차 생산량만 90톤에 육박한다. 

이우초등학교 맞은편에 있는 ‘중국보이차고6대차산문화박물관’을 관리인의 안내로 둘러보고 신시가지로 변하고 있는 이우거리를 지나 보이차의 모료가 되는 마오차(毛茶)를 연도별로 보관하고 있는 차 창고를 찾았다. 창고 책임자의 안내로 생산시기와 마을에 따라 분류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고수차를 만나보는 호사를 누렸다. 이우 정산이라는 막연한 이름보다 구체적인 마을 이름이 명시된 차를 선택하면 좋은 차를 선별하는 지혜가 될 수 있다.

중국 최후 소수민족 기낙족, 쇠퇴일로 걷다 뒤늦게 기사회생

 

기낙(基諾)은 청나라 보이부(普府)에 소속된 고(古) 6대 차산 중 으뜸이었다. 생산량도 많고 차(茶) 품질이 좋은 만큼, 유명 차산지에서도 기낙 지역 찻잎을 가져다 가공했다. 제갈공명(諸葛孔明·181~234)이 차를 전파했다는 설화가 있는 공명산이 바로 기낙산이다. 기낙의 당시 이름은 유락(悠樂)이었다. 명나라 말기부터 전성기를 누렸던 기낙의 차산은 청나라 때 민란과 화재, 전염병까지 덮치면서 황폐해졌다. 그 후 300년 동안 쇠퇴일로를 걷던 기낙이 보이차 열풍에 힘입어 기사회생하고 있다.

매년 2월6일부터 사흘 동안 열리는 기낙족 전통 축제에서 대고무를 추고 있는 모습 

청나라 때 민란과 화재로 차산 황폐화

기낙산 자락에 흩어져 있는 40여 개 촌락으로 이뤄진 기낙족향은 운남성(雲南省) 서쌍판납태족자치주(西雙版納族自治州)의 주도인 경홍시(景洪市)에서 동북 방향 24km에 위치한다. 동서길이가 75km인 기낙산은 남북 사이도 50km가 넘지만 도로망이 촘촘히 발달해 사통팔달로 산길이 연계되며 도로 포장률도 산골답지 않게 60%에 육박한다. 기낙산은 해발고도가 575m부터 시작해 높은 지대는 1691m에 달해 일교차가 큰 산악지대 기후 특성을 갖고 있다. 최고기온은 40도를 넘나들고 연평균기온은 20도로 아열대 기후에 속한다. 연 강수량은 1400mm로 풍부하다.

기낙족향은 인구 1만8000여 명 중 97%가 기낙족이다. 기낙족은 1979년 중국국무원이 공식 인정한 마지막 소수민족으로 등재됐다. 한장어계(漢藏語系) 장면어족(藏緬語族)에 속하는 기낙족은 언어는 있지만 문자가 없어 민족에 대한 고대자료가 없다. ‘후손에게 자랑스러운 어른’이라는 뜻을 가진 소수민족 ‘기낙’은 원시 씨족사회 흔적이 남아 있어 장손을 중심으로 대가족이 공동체를 이뤄 거주한다. 부친이 돌아가시면 1년 후에 새집을 지어 자녀들이 돌아가신 아버지께 신축한 집을 바치는 ‘상신방(上新房)’이라는 독특한 의식을 한다. 

기낙족은 매년 2월6일부터 사흘 동안 ‘특무극(特懋克)’이라는 전통 축제를 벌인다. 태양을 상징하는 커다란 북을 마을 한가운데 매달아놓고 북을 두드리며 춤추는 대고무(大鼓舞)를 필두로 죽간무(竹竿舞)와 파종무(播舞)를 추며 음식을 나눈다. 여자들은 방직기술과 자수 솜씨를 겨루며 풍성한 한 해를 기원한다. 제갈공명이 촉나라로 회군할 때 따라가지 않고 차를 재배하며 기낙족과 동화된 병사들의 후예를 주락족(落族)으로 세분하기도 한다.  

기낙족은 제갈공명을 차를 전파해 준 차신으로 믿고 있다. 제갈공명이 구리로 만든 커다란 징을 남겨뒀다고 알려진 기낙산을 공명산으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낙족은 음력 7월23일 제갈공명이 태어난 날에 맞춰 봄에 딴 첫 찻잎을 바치고 공명등(孔明燈)을 걸어놓는 ‘차조회(茶祖會)’를 매년 이어간다. 외지인들이 원주민을 속이고 사기도박으로 차산을 빼앗자 화가 난 토착민들이 차산에 불을 지르고 유혈충돌이 벌어졌을 때 제갈공명이 화해시켰다는 설화도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게 구전돼 오는 곳이 기낙이다.

기낙족은 숯불로 찻잎을 구워 끓여 마시는 화소차(火燒茶)라는 특이한 전통차 제조기법과 량반차(凉拌茶)라는 원시 형태의 차 섭취 풍습이 있다. 량반차는 찻잎을 기름과 간장으로 버무려 나물로 먹는 음식이다. 찻잎을 죽통 안에 다져넣어 숯불로 열을 가해 만드는 죽통차(竹筒茶)와 찻잎을 달이고 졸여 검고 끈적한 상태로 만든 차고(茶膏)는 특화된 기낙족 산물이다. 차고를 물에 녹여 마시면 급체와 설사를 잡아주고 딸꾹질을 멈추게 한다. 부은 상처에 바르면 부기를 진정시키는 효과도 있다.

기낙은 1728년까지 청나라 정부가 아닌 지방 토호세력이 지배했다. 당시 한족 상인이 살해당하고 토사가 이를 묵인하는 일이 있었다. 청나라는 군대를 보내 대항하는 소수민족을 참살하고 차산과 마을을 불태우는 ‘겁상해민(劫商害民)’을 통해 청나라 정부가 관리를 보내 직접 다스리는 개토귀류(改土歸流) 정책을 시행했다. 1729년(옹정 7년) 청나라는 기낙의 옛 지명인 유락에 보이부를 처음 설치했다. 종이품 관직에 해당하는 동지(同知)를 책임자로 삼고 유격전에 능한 무관에게 병사 500명을 주어 보이부에 주둔하게 했다.  

기낙에 설치한 보이부는 기낙을 비롯한 고 6대 차산에서 황실에 바치는 공차와 차세(茶稅) 징수임무를 수행했다. 기낙 지역을 넘어 라오스와 경홍 지역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 경홍 일대는 전통적으로 태족(族)이 장악하던 곳이었다. 지금도 경홍시가 주도인 서쌍판납은 태족 자치주다. 청나라 정부의 직접 통치에 반기를 든 태족은 기낙족과 연합해 봉기했다. 차산과 마을은 또다시 불길에 휩싸였다. 끈질긴 저항은 3년이 지나도록 진압되지 않았다. 황금알을 낳던 차산은 황무지로 쇠락했다. 

기낙은 황폐화되고 악성 말라리아가 기승을 부렸다. 청나라 관병이 병마에 시달리면서 토벌은커녕 기낙에 주둔하기조차 힘들어졌다. 1735년 청나라는 치욕을 감수하고 보이부를 사모(思茅)로 이동시켰다. 개토귀류 정책을 수정해 의방(倚邦)의 소수민족을 세습관리로 임명하고 기낙을 통제하도록 했다. 1912년 청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177년 동안 기낙족은 보이차를 만들 수 없었다. 기낙에서 채취한 찻잎을 상인들이 수매해 이무(易武)와 사모, 의방에서 차를 만들었다. 고 6대 차산의 선두주자 기낙은 몰락하고 의방과 이무가 새로운 보이차 강자로 부각됐다.

기낙의 찻잎은 인도와 유럽에도 팔려 나갔다. 1886년 영국인 클라크가 쓴 책 《귀주성과 운남성》을 보면 영국 동인도회사가 콜카타(Kolkata)와 다르질링(Darjeeling)에서 기낙 찻잎을 수입해 관리한 기록이 나온다. 청나라는 망했어도 기낙의 수난사는 끝나지 않았다. 항일전쟁과 국공내전을 피해 들판을 떠난 기낙족은 깊은 산속에서 화전을 일구느라 차밭을 불태워야만 했다. 1941년 이무에서 차 장사를 하는 양안원(楊安元)이 기낙족 전통과 관습을 무시했다가 충돌이 생겼다. 기낙족은 인근에 거주하는 요족(族)과 합니족(哈尼族)을 규합해 폭동을 일으켰다. 진압을 위해 국민당 군대가 출동했다. 

기낙산 자락 고차수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20세기 말부터 보이차 열풍 시작돼

기낙의 산야는 소수민족과 함께 죽어갔다. 격랑의 시기가 지나고 1970년대 측량 결과 청나라 초기 700만㎡가 넘던 다원은 150만㎡로 줄어 있었다. 20세기 말부터 불어온 보이차 바람이 뒤늦게 기낙에도 불기 시작했다. 밀림 속에 숨어 있던 고차수(古茶樹)들이 잠을 깨기 시작했다. 고차수로 만든 고수차 가격이 급등하면서 기나긴 세월 동안 ‘차’로 고난받던 기낙족에게도 훈풍이 불어왔다. 중국 최후의 소수민족 기낙족이 자연으로부터 받은 녹색자원, ‘차’가 이번에는 전화위복이 되기 바란다. 

쓸쓸함이 넉넉했다. 정적을 깨고 남정네들이 장작을 패는 소리만 의방(倚邦) 옛 거리를 울리고 있었다. 3년 만에 다시 찾아온 의방은 여전히 한적한 산골마을이었다. 청나라 시절 의방 일대는 19개 자연부락의 인구가 9만 명이 넘었다. 차를 사고파는 봄철에는 외지에서 온 상인과 노동 인력까지 가세해 20만 명이 의방차산을 누비고 다녔다 한다. 현재는 의방을 포함한 13개 마을을 다 합쳐도 214가구에 936명이 살고 있다.

의방은 명나라 말기부터 석병(石屛)의 한족과 초웅(楚雄)에 거주하던 이족(彛族)이 집단이주해 차 산업을 일으켰다. 청나라 초기에 사천성(四川省) 농부들이 유입되면서 사천에서 가져온 소엽종(小葉種) 차나무를 대량 증식시켰다. 소엽종 찻잎으로 만든 보이차를 청나라 황실에 공차로 보내고, 전설적인 유명 차창에서 소엽종으로 보이차를 만들던 의방은 고(古) 6대 차산 가운데서도 해발고도가 제일 높은 곳이다. 해발 1950m에서 채취한 소엽종 찻잎을 우리면 쓴맛은 적고 부드러운 단맛이 올라온다.  

소엽종 차나무의 새싹은 중국 현지에서 고양이 귀라고도 불린다.

 

소엽종 보이차, 정부의 보이차 개념과 상충

의방에서 만들어온 소엽종 보이차는 2008년 중국 정부가 정한 보이차 개념과 상충된다. 운남성 표준계량국이 정의한 보이차는 ‘운남 지역 대엽종 차나무 잎을 쇄청한 원료로 만든 생차(生茶)와 숙차(熟茶)’지만, 대엽종이 아닌 소엽종으로 만든 보이차가 청나라 때부터 지금까지 생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소엽종 보이차는 중국 정부가 공표한 보이차 정의에 맞지 않다는 논란이 가열되면서 소엽종 보이차의 원조인 의방은 오히려 더 유명해졌다. 옛 영화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의방을 찾는 외지인이 많이 늘었다. 

의방 가는 길은 크게 두 방향이 있다. 운남성 서쌍판납주의 주도인 경홍시에서 이무(易武)로 가서 상명(象明)을 거치는 길과 기낙(基諾)을 경유하는 방법이다. 새로 조성된 기낙 민속촌도 볼 겸 필자는 기낙 방향으로 갔다. 중국 전체 인구에서 2만 명도 채 안 되는 소수민족 기낙족은 15세가 되면 성인식을 치르고 미혼남녀의 교제를 위해 마을에서 제공하는 공방(公房)을 사용할 수 있다. 기낙 민속촌은 산허리를 향해 올라가며 기낙족의 조상신과 주거풍속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산등성이를 다듬어 만든 광장에서 태양을 상징하는 큰 북을 치며 대고무(大鼓舞)를 추고 있었다. 산나물을 곁들인 간단한 식사와 기낙족이 만든 보이차가 공연 중에 제공됐다.   

의방에 햇살이 남아 있을 때 도착하기 위해 민속공연 도중에 산 아래로 내려왔다. 하산 길에도 전통 베틀로 베를 짜는 작업장과 철을 다루는 대장간이 눈길을 끌었다. 발 딛는 부분이 날카로운 칼날로 만들어진 대나무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기낙족 청년의 기예가 돋보였다. 불쇼와 민속전시관도 있었지만 산길로 140km를 더 가야 하는 만큼 사륜구동을 타고 의방으로 향했다. 제갈공명이 말 탈 때 발을 끼우는 쇠로 된 발걸이 한 쌍을 묻어두고 갔다는 혁등(革登)차산을 지나 의방에 도착했다. 의방은 제갈공명이 나무로 만든 딱따기를 남겨뒀다는 설화가 있다. 

의방 일대를 지배했던 태족(傣族)은 의방을 마랍(磨腊)이라 불렀다. 마랍은 ‘차 마을’이란 뜻이다. 360㎢에 달하는 고산지대에 다민족이 어울려 살았던 중심지가 의방의 옛 거리다. 경제와 지역정치의 중심 무대가 된 의방의 부흥은 기낙 지역의 민란 덕분에 이뤄졌다. 1729년(청, 옹정 7년) 기낙에 보이부(普洱府)를 처음 설치한 청나라는 민란과 전염성이 강한 풍토병을 피해 1735년 사모(思茅)로 보이부를 옮기며 유화정책을 썼다. 중앙관리가 아닌 의방의 토착세력을 세습관리로 임명하고 기낙을 통제하도록 했다.   

① 기낙족이 민속촌 산등성이에 모셔놓은 조상신 ② 칼날사다리를 내려온 기낙족

 

차나무 살리기 위해 큰 나무 편법 고사

의방 토사(土司)로 임명된 조(曹)씨 가문은 청나라가 망할 때까지 대를 이어 의방의 번영과 몰락을 함께했다. 돈이 넘치던 시절 의방 토사는 관제묘(關帝廟·관우를 모시는 사당)를 만들어 더 많은 재물을 기원하기도 했다. 관우는 중국에서 재물신(財物神)으로 통한다. 관제묘를 중심으로 향우회 성격의 상인조합이 형성됐다. 석병회관을 필두로 사천회관과 초웅회관이 들어서며 출신 지역별로 회관을 만들어 상인들이 단결했다. 토사 집안으로 위세를 떨치던 조씨 가문도 차 산업에 명운을 걸었다.

의방에서 만든 차는 중국을 넘어 티베트와 홍콩, 마카오로 수출됐다. 월남을 거점으로 동남아시아와 유럽에도 보이차가 전해졌다. 의방에 속한 만송(曼松)은 대엽종 차나무와 소엽종 차나무가 혼재한 지역으로 이 둘을 섞어 만든 차가 높은 평가를 받아 만송차를 황실공차로 보냈다. 황실공차는 청나라 조정대신과 외국 사신에게 하사품과 답례품으로 사용됐다. 청나라 말기에는 민란과 치안부재로 차 산지에서 운남성의 성도인 곤명(昆明)까지도 차 운송이 원활하지 않게 됐다. 

의방의 전성기를 가져온 민란은 의방을 잿더미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초웅 지역의 석양은광(石洋銀鑛) 운영권을 놓고 한족과 회족(回族)이 충돌한 사건을 부당하게 처리한 청나라 정부는 1856년 무고한 회교도 4000여 명을 참살한 ‘곤명 대학살’도 수수방관했다. 두문수(杜文秀)와 함께 운남에 거주하는 회족들이 판데(Panthay)의 난을 일으켰다. 청나라에 무시당하던 운남의 다른 소수민족들도 민중봉기에 합류했다. 두문수는 대리(大理)를 점령해 평남국(平南國)을 세워 중국 최초 회교 국가를 선포했다. 

의방에 두문수가 직접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회족과 연합한 소수민족이 의방을 공격해 토호 세력과 상인을 살해하고 차산을 불태웠다. 사흘 밤낮을 휩쓴 화재는 차산을 초토화시켰다. 1867년 곤명 공격에 실패하면서 세력이 꺾인 두문수는 1872년 죽었지만, 민란 와중에 직격탄을 맞은 의방의 차 산업은 이미 풍비박산이 났다. 의방 옛 거리는 퇴락한 건물 앞에 방치된 돌사자만이 옛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필자는 의방 옛 거리를 벗어나 마을사람과 함께 차산으로 걸어갔다. 밀림 사이로 듬성듬성 서 있는 차나무가 밭에서 재배하는 차나무와는 확연히 구분됐다. 산비탈로 내려서니 공터처럼 황량한 공간에 차나무만 서 있었다. 거목들이 밑동껍질이 벗겨진 채 말라죽고 있었다. 마을사람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어투로 “키가 크고 가지가 무성한 나무 때문에 차나무 일조량이 부족한데, 정부에서 벌목을 못하게 해 편법으로 큰 나무들을 고사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대략난감이었다. 돈 앞에 자연은 여기에서도 우선순위를 양보하고 있었다. 

비가 내렸다. 밤새도록 퍼붓던 비는 새벽에도 멈추지 않았다. 징홍(景洪)의 아침을 구성진 빗소리로 맞이했다. 윈난성(雲南省) 성도(省都) 쿤밍(昆明)에서 780km 서남 방향에 있는 징홍은 중국에서 유일한 타이(傣)족 자치주, 시솽반나(西雙版納) 주도(州都)로 교통요충지다. 보이차(普洱茶) 고향 윈난성에서도 품질 좋은 차나무가 살고 있는 알짜배기 차산은 징홍을 중심으로 산개돼있다. 일반 승용차로는 갈 수없는 험로가 많아 사륜구동 SUV가 필수다. 가까우면 3시간 멀면 이틀 넘게 가야하는 첩첩산중에 천년 이상 묵은 차나무가 보물처럼 숨어있다.

 

중국 CCTV 제작진이 준비해둔 사륜구동 SUV를 타고 오전 9시 징홍을 출발했다. 차산에서 촬영 중인 CCTV 다큐멘터리 제작팀에 합류하러 가는 길을 궂은비가 속절없이 따라왔다. 수 천 년 전부터 변하지 않고 오늘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중국 전통문화 베스트 5’를 중국정부가 선정하자 중국 CCTV는 다큐멘터리 특집을 기획했다. ‘베스트 5’로 인정받은 보이차를 테마로 ‘티엔츠푸얼(天賜普洱, 하늘이 내려준 선물 보이차)’을 제작하는 CCTV PD 류춘위(劉春雨)와 1년 여에 걸친 일정 조율 끝에 첫 출연하는 날 하염없이 내리는 비는 야속하지만 반갑기도 했다.

 

 

영화와 TV를 연출하며 카메오 출연은 재미삼아 해봤지만 한국인으로서 유일하게 중국CCTV로부터 초대받아 중국 현지에서 보이차 전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상황은 기대보다 긴장이 앞섰다. 이틀 전 오후 6시30분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한 대한항공 KE885편은 4시간 35분 만에 쿤밍 창수이(長水)국제공항에 착륙했다. 국내선 항공편이 마감돼 쿤밍공항호텔에서 1박하고 다음 날 오후 징홍 까사(嘎洒)공항에 도착했다. 중국 CCTV 제작진이 예약해준 호텔에서 하룻밤 지새우고 드디어 촬영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었지만 드세게 내리는 비로 촬영이 늦춰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징홍을 벗어난 차는 보이차 산업 중심기지로 부각돼 성장일로에 있는 멍하이((勐海)현을 거쳐 라후(拉祜)족 자치지역인 란창현(瀾滄縣) 후이민향(惠民鄕)에 속한 징마이(景邁) 차산입구까지 3시간 만에 도착했다.

 

비구름 가득한 차산(왼쪽)과 보이차를 만드는 윈난산 대엽종 어린 찻잎의 튼실한 자태

수천 가지도 넘는 다양한 차가 전 세계에서 생산되지만, 중국 10대 명차로 손꼽히는 보이차(普洱茶)는 중국 윈난성(雲南省)에서만 생산된다. 윈난성은 2009년 6월1일부터 중국 중앙정부의 승인을 받은 ‘보이차 지리 표시 상품 보호 관리법’을 적용해 윈난성이 아닌 타 지역에서 생산한 차는 ‘보이차’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없는 배타적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 단순한 농산물 경지를 넘어 중국 문화와 산업, 그리고 관광업과 연계한 5차 산업 키워드로 떠오른 보이차. 그 실체를 찾아 인천공항에서 윈난성(雲南省) 쿤밍(昆明)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기내에서 제공하는 커피와 차 대신 더운 물을 부탁해 휴대용 텀블러에 담아온 보이차를 우려 마시며 천연자원이 풍부한 윈난성을 되새김해봤다.  

 

중국 서남단에 있는 윈난성은 동남아 국가로 이어지는 교통요충지다. 서쪽은 미얀마, 남쪽은 베트남 및 라오스와 접해있다. 4000Km가 넘는 긴 국경선을 갖고 있지만 한반도 휴전선과 같은 긴장감은 전혀 없다. 윈난성 동쪽에는 광시좡족(廣西壯族)자치구와 구이저우성(貴州省)이 있으며 시장(西藏)자치구와 쓰촨성(四川省)이 북쪽에 있다. 남한의 4.5배가 넘는 면적을 가진 윈난은 ‘첨단 IT산업의 비타민’ 희토류를 비롯해 철, 아연, 구리, 주석, 대리석, 납 등 지하자원이 풍부하다. 평균해발 2000m를 웃도는 윈난은 험준한 산악지대 84%와 완만하게 경사진 구릉지역과 계곡이 11%에 달하며 평평한 분지는 5%에 불과하다. 아열대 기후에 속하는 북위 21~29도에 걸쳐있지만 고산지대가 많아 열대우림기후부터 만년설까지 동시에 공존하는 저위도 고산지대 기후 특징을 갖고 있다. 한 지역에서 1년 4계절을 하루에 느낄 수 있는 윈난은 다양한 희귀식물자원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끝없이 펼쳐지는 차산

 

새로 지은 후이민향 시외버스터미널

중국 전체 식물의 55%가 원난성에 자생

 

중국에 존재하는 동식물 50%이상이 분포하는 윈난은 중국 전체 식물의 55%에 이르는 1만7200여종과 중국약용식물의 54%에 해당하는 6100여종이 자생한다. 거대한 중국시장 진출과 네팔, 몽골, 러시아 등 주변국 생물자원 확보를 위한 전진기지로 삼기위해 한·중 생물다양성 공동연구센터를 설립한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해외생물소재허브센터가 2007년 4월부터 연구 활동 중이다. 중국 파트너인 윈난성농업과학원(YAAS)은 9개 산하 연구기관에 1000여명의 연구 인력이 소속된 농업전문연구기관이다.

 

윈난성 성도 쿤밍(昆明)에서 비행기를 이용하면 징홍까지 45분이면 충분하지만, 승용차를 타고 중국 첫 국제고속도로인 쿤밍-방콕 고속도로와 국도를 이용했다. 8시간이 소요되는 주행시간에도 변화무쌍한 산천이 지루함을 달래줬다. 중국 내수시장은 물론 해외 꽃 수출 중심기지로 자리 잡은 윈난은 화훼재배 최적지로 중국 전체 화훼 재배면적의 40%를 차지하고 있어 달리며 스치는 형형색색의 꽃밭은 안구를 정화시켜줬다. 해발고도가 낮은 지역을 지나면 바나나를 비롯한 열대과일단지가 펼쳐졌다. 질과 양 모두 중국 최고를 자랑하는 담배 밭이 고무나무 경작지와 번갈아 이어졌다. 시솽반나(西雙版納) 주도(州都) 징홍(景洪)이 다가오면서 차밭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윈난 특산물 중에서도 빠질 수 없는 빼어난 농산물이 차(茶)다. 윈난은 녹차 생산량이 제일 많고 보이차가 그 다음이다. 홍차와 백차도 전국적으로 지명도가 있다. 

 

고차수 다원

 

저지대에서 재배되는 바나나

이번 탐방 첫 목적지는 세계최대 고차수(古茶樹)단지로 인정받은 망징징마이차구(芒景景邁茶區) 중에서 타이족(傣族寨)이 모여 사는 징마이 따짜이(大寨)로 정했다. 중국정부가 발표한 보이차 정의와는 달리 대엽종이 아닌 중엽종으로 만든 보이차지만 보이차왕후(普洱茶王后)라는 애칭을 가진 징마이(景邁)차산을 향했다. 멍하이현(勐海縣)과 붙어있는 후이민향은 보이차를 테마로 차산 탐방과 차창 견학 및 제다 실습 등 체험위주 관광단지를 만들기 위해 포장도로를 완비하고 민간기업과 합자해 숙박시설과 시외버스터미널을 새로 지어 운영하고 있었다.

 

새로 포장된 길을 따라 징마이차산에 이르렀다. 해발 1400~1600m 사이에 펼쳐진 다원의 총면적은 29만4000무(畝·666㎡)인데 승용차로 한참을 달려도 그 끝을 쉽게 볼 수가 없었다. 고차수(古茶樹)단지만 1865만㎡가 있는 망징산(芒景山)과 징마이산(景邁山)은 ‘차나무 자연박물관’으로 불린다. 세계 최대면적을 자랑하는 천년고차수 다원은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산허리를 이어가는 차밭

 

타이족 건축양식으로 지은 야외 차실

징마이 고수차 재배 역사만 1800년 

 

1800년이 넘는 차 재배 역사를 자랑하는 징마이 고수차를 맛보기 위해 타이족 여인의 집으로 갔다. 1년 만에 아무런 사전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갔지만 찻잎을 태양 아래 말리고 있던 타이족 여인은 늦둥이 아들을 안은 채 반가이 맞아줬다. “미리 전화라도 하고 와야 맛난 것도 준비하고 하는데”라며 아쉬워하는 그녀에게 “번거롭게 하는 것이 미안해서 그냥 왔으니 차만 한 잔 마시자”고 했다. 내 뜻과 상관없이 방목해서 키우던 닭을 잡고 직원을 오토바이에 태워 급히 찬거리를 사러 보냈다. 귀여운 아이를 잠시 유모차에 태운 그녀는 농약과 무관할뿐더러 유기농 비료도 필요 없는 고수차 다원에서 찻잎을 따서 갓 만든 고수차를 우려냈다. 매끄럽게 넘어가는 부드러운 단맛은 연인의 입술처럼 달달했다.

 

보이차 매력에 젖어 중국 윈난성(雲南省) 탐방을 수시로 나선 첫 번째 이유는 농약과 화학비료로부터 자유로운 생태환경이 우월한 곳에서 자라는 차나무를 찾기 위해서였다. 여러 해 동안 차산을 다녀보니 좋은 차나무가 아무리 훌륭한 자연조건에서 살아도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이었다. 차 만드는 사람이 돈을 좇아 욕심 부리면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게 된다. 찻잎을 채취하는 시기와 적정 횟수도 무시하고 연중 수시로 잎을 따 차를 만들어내면 겉은 멀쩡해도 맛과 질이 현격하게 떨어지는 무늬만 보이차가 될 수 있다. 차나무를 찾아 험준한 오지에 있는 차산을 헤매고 다녔지만 그 길 끝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태양으로 말리는 찻잎

 

타이족 여인과 아기